구약성경: 낡아지고 난처한가요? 아니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요?
- 원포이스라엘
- 2023년 1월 24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월 26일
예수님께서 주신 새 언약이 시내 산에서 맺은 옛 언약을 대체한다면, 왜 우리는 구약을 읽어야 할까요? 히브리서 8장 13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율법을 스스로 이루셨기 때문에 번거롭고 문제가 많은 구약성경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우리가 이제 그런 것들은 – 조개류를 먹지 않거나 옷에 다른 섬유를 섞지 않고 사람을 돌로 치는 것과 같은 모든 것들 – 다 극복한 거지요, 그렇지요?
구약성서에 기록된 많은 부분이 오늘날 사회에서는 너무 잔인하고 부적절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성경의 이 낡은 부분이 그냥 사라지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직 구약성경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견해일지라도 히브리 성경이라고 부르면 더 나을 구약성경을 무시하는 것은 끔찍한 실수가 될 것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바울이 이 글을 썼을 때 그는 히브리 성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신약성경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정말 버리시겠습니까?
둘째,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5절에서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히브리 성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마도, 여러분도 알다시피, 구약성경은 중요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신약성경을 읽어 보셨나요? 신약성경도 구약성경만큼이나 문제를 가진 듯이 보입니다!
다음은 버락 오바마가 2006년 6월 회복요청(Call to Renewal)컨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이 우리의 공공 정책을 인도해야 합니까? 노예 제도는 괜찮고 조개류를 먹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라고 암시하는 레위기를 따라야 합니까? 아니면 자기 자녀가 믿음에서 멀어지면 돌로 쳐야 한다는 신명기를 따를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 국방부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급진적인 본문인 '산상수훈'를 고수해야 할까요! 그러니 우리가 흥분하기 전에 지금 성경을 읽읍시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고 있지만 오바마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성경을 읽는다면 그들은 신약성서에서 엄청난 분노와 당혹감과 불편한 차별적 언어 사용을 많이 발견할 것이고, 신약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에서도 터무니없는 은혜와 긍휼과 급진적인 사랑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바마와는 달리 저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 강력하게 오늘날과 상관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부분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다 보면 그 표면 아래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진리의 놀라운 풍요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드로쉬 다라쉬(דרוש דרש)”라는 두 개의 히브리어 단어가 율법(모세오경)의 중심에서 부딪칩니다. 이것은 “부지런히 찾다 또는 연구하다”를 의미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레위기와 신명기와 같은 도전적인 책을 그의 말씀의 시작 부분에 두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코란의 첫 장은 짧고 쉽지만 긴 장이 이어지며 그 내용은 점점 도전적이고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대체로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왜그럴까요? 아마도 그것은 독자에 대한 도전, 즉 테스트일 것입니다. 흘끗 보고는 코를 찡긋거리며 외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장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이 당황스런 책들에 의미와 선함이 있다는 희망과 신뢰를 보여주면서 한번 기회를 줘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식에서 이것을 봅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진정한 주님이심을 부인할 수 없고 피할 수 없게 만드시면서 그의 광채와 영광으로 쉽게 우리를 놀라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은 우리의 자유 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강요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원함으로 자발적으로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이 의로우시고 지혜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임을 항상 신뢰하면서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부지런히 구하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좋은 답들이 있음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그것들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추구할 가치가 있고, 위해서 투쟁할 가치가 있고, 위해 싸울 가치가 있는 분으로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얼거나 타지 않도록 지구에서 완벽한 거리에 있는 태양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믿을 수밖에 없고 그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을 정도의 넉넉한 신비로 자신을 감싸십니다. 기꺼이 찾는 자들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값진 진주 같으신 분입니다.
언약들을 이해하십시오 – 둘이 아니라 다섯입니다
성경을 탐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그 안에 있는 언약들에 대한 이해입니다. 언약은 두 개 뿐 아니라 다섯 개(또는 세는 방법에 따라 그 이상)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조건적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언약은 어떠했습니까?
모세를 통한 언약과 예수님 안에서의 새 언약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언약을 노아와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으셨습니다. 각 언약에 대해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약속인가? -이 언약은 영구적인가 일시적인가? -이것은 일정한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대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인 가?
이것은 예수님께서 소개하신 새 언약이 왜 구약 전체를 폐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건적인 모세와 맺은 임시 언약에만 관련된 것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모세 자신도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극적으로 실패했고, 추방당하고 형벌을 받았으며, 제사 제도가 포함된 모세의 율법은 영원히 메시아의 궁극적이고 영구적인 희생으로 단번에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더 나은 길”은 메시아의 피로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살라는 지시는 우리 마음에 기록된 법과 우리가 메시아의 철저한 방식으로 살도록 돕기 위해 오신 성령과 함께 훨씬 더 높은 표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땅에 홍수를 일으키지 않으시겠다고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서 그분이 하신 약속은 결코 무효화되지 않았으며, 다윗의 보좌와 관련된 그분의 언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세 율법의 말씀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치로 남아있으며, 토라 전체에 걸쳐 하나님은 일어날 일에 대한 많은 놀라운 실마리를 엮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읽으며 예수님을 보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더 많이 공부할수록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끝없는 매력의 우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약속과 선물을 어기지 않으셨고(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말했듯이, 그것들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다윗의 보좌에서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열방에서 이스라엘을 다시 모아 그 땅에서 다시 세우겠다는 그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놀라운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다른 모든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보증합니다.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입니다” 딤전 1:8
성경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평생의 여정이지만 여기에 몇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문맥 이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즉,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문학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각 단어는 그 의도를 가지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탕자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을 필요는 없으시지만, 비유를 설명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하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온갖 이야기와 시와 편지와 비유와 노래로 가득 차 있고 욥기는 희곡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실제로 일어난 엄청난 양의 역사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 말씀들이 누구에게 쓰여졌는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문학의 종류에서 나오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불편한 사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어깨 너머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배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읽고 있는 말씀의 문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성경은 삶을 위한 생각들과 영감을 주는 좋은 아이디어의 모음일 뿐 아니라 실제 역사와 지리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입니다. 우리의 메시아는 진짜였습니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유대인 가족은 진짜였습니다. 주님은 정말 살았었고, 정말 죽었고, 정말 부활했고, 실시간으로 진짜 장소로 다시 돌아오실 것 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제외한다면, 우리에게는 거의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위한 구속의 이야기를 그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의 이야기에 걸기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와 그것이 얼마나 실제적인지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키면 우리 시대에 그분의 말씀을 적용하는 방법과 예언의 경전을 읽는 방법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예언과 지혜를 담고 있는 초자연적인 책입니다. 즉, 메시아와 이스라엘과 중동에 대한 예언, 그리고 세계적인 사건들에 대한 예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예언과 예수님의 삶을 비교하고 성경의 예언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 이스라엘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특권도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에 상관이 있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소홀히 하지 말고 진정으로 성경을 이해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저자를 더 잘 이해하고, 그가 말씀하시는 우리의 갈 곳을 알고, 그의 말씀 안에서 끝까지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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