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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신학: 우리는 지금 모두 이스라엘인가?

대체 신학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신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용어는 새롭고 생소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끝났다고 믿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것을 의미하는 "대체주의"나 "성취 신학"과 같은 다른 용어를 선호합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벨기에나 태국과 같은 또 다른 나라일 뿐이며, 현대 유대 국가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는 제안은 엘리트주의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전체적 이슈는 그들의 교회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며 그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두고는 공백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대 민족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바라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단순히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은 수 백만 명이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성경 전체(구약과 신약 모두)에 등장하지만 이스라엘이 오늘날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제가 감히 말하건대 아주 많습니다.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오셨으므로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이제 교회를 의미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신약성경에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방향을 바꾸신 것처럼 들리고, 이제 모든 신자는 집단적으로 “이스라엘”인 듯한 몇 구절들이 있는데, 우선 여기에서 그것들을 살펴봅시다.


참 유대인: 마음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그러면 이제 마음과 영에 할례를 받은 이방인을 유대인으로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구절은 지구상의 모든 유대 민족의 부분집합, 곧 유대인이면서 또한 거듭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후자여야 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의 이 구절은 피와 할례로 유대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당신의 민족성은 영원으로 가는 VIP 패스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과 성령으로 할례를 받은 자, 곧 거듭난 자가 하나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대체 신학의 이면에 있는 생각과는 반대로 이것을 쓴 사람(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이방인을 포함한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분명히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그리스인)을 하나가 아닌 구별된 존재로 봅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전도 전략을 추진하는 정도까지 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울은 또한 "유대인들"을 복음이 필요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을 [이방]기독교인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거듭난 신자를 의미한다면 왜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겠습니까?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정의가 이방인을 포함하도록 확대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메시아를 포용하는 유대 민족을 의미하도록 좁혀지는 것을 다시 봅니다. 바울은 "모두가 아니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롬 9:6-7).


9장에서 바울은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믿음의 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바로 다음 장의 초입에서 명시적으로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 10:1-2).



다시 말하지만, 바울이 "이스라엘"이 이제 메시아의 몸, 모든 지역의 모든 기독교인을 의미하도록 의도했다면 도대체 왜 그는 그들이 구원받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했을까요?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은 구원이 필요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이미 구원받은 교회가 아닙니다.


로마서 9장, 10장, 11장을 더 많이 읽을수록 이스라엘이 교회를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은 더 분명해집니다. 유대 민족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이 필요한 민족이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고 그 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들이 이제 하나님 보시기에 참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이라고 말하지만 유대인이 아닙니다...

비슷한 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편지 내용을 말씀하실때 일어납니다. 주님은 "사탄의 회당"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언급하셨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 2: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 3:9).


대체 신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종종 유대 민족에 대하여 이 말씀들을 휘두릅니다. 물론 그들은 종종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유대인을 포함할까요? 수만 명의 유대인이 사도행전에서 구원받았지만(행 21:20 기록처럼)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 인구에서 매우 소수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가짜 유대인입니까? 요한복음 8장에서 요한이 다시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2-47).


이 신랄한 말씀은 의도적으로 유대 민족을 예수님으로부터 막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과 눈 앞에서 기적을 행하심을 보면서도 불신앙을 굳게 지키며 다른 사람들도 믿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들은 "열방의 빛"이 되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정반대로 행하고 있었고 그 빛이 바로 거기 있을 때는 그 빛을 끄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정반대로 서서 행동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와 사탄 자신의 일입니다. 이해하시겠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몇 가지 선별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의 주요 유대인 지도자 중 상당수가 유대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이 요한계시록에서 박해받는 교회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분은 공격을 받고 있는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불법적으로 영향력 있는 역할에 임명된 - 심지어 제사장까지- 부패한 지도자들의 불경스러운 동맹이 신자들에 대항하여 로마와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그는 바벨론과 애굽 가문의 이방인들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도 제사장 계급 사이에는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자처하는 가이사나 로마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고, 주의 만찬때문에 식인 풍습으로 고발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이 반드시 모두 유대인은 아니었고, 더욱이 산헤드린의 최고위급 구성원들은 개종자였습니다. 나시(최고 지도자)였던 쉬마야와 유대 종교법원의 수장이었던 압탈리온은 둘 다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의 후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구전 율법"은 주로 랍비 아키바의 작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의 부모는 개종한 가나안 왕 시스라의 후손이였습니다. 아키바는 "유대 현인들의 수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탈무드 유대교의 아버지입니다. 아키바의 제자들 중에는 카발라의 아버지인 랍비 시몬 바르 요하이와, 믿기 힘들겠지만 로마 황제 네로의 후손인 랍비 메이르가 있었습니다. 아키바는 또한 (로마에 대항하여 2차 반란을 주도한)시몬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로 선포하고, 로마인에 대한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모든 유대인들은 그들의 민족과 단절되어야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탈무드에는 많은 훌륭한 이야기와 도움이 되는 지혜가 담겨 있지만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랍비의 말을 더 믿는 것이 머지 않아 유대인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을 유대인이라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육체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영적으로도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문화적으로나 의식적으로는 유대교로 개종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집에 대혼란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을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다시 말하지만, 유대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유대인 메시아로부터 멀어지게 한 개종자들을 위한 강력한 말씀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교 회당의 일상적인 기도에는 예수님을 믿는자를 뜻하는 "배교자"에 대한 저주를 포함하는 "축복"이 그 기도문에 추가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들이 회당에 서서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모든 유대 민족이 그 '사탄의 회당'에 관여한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에게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벗겨내어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덧붙여 넣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야고보서(약 1:1)에서 모든 열 두 지파가 살아 있으면서 잘 문안 받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열 두 각 지파에서 수천 명이 하늘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계 7:4-8) 결정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두 구절이 같은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그런 랍비들이 구속될 수 없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바로 바울을 보십시오! 그리고 룻, 라합, 이드로와 같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듯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집에 합류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출애굽 때 섞인 무리가 이집트에서 올라오고 에스더서에서 많은 페르시아인들이 유대인들과 합류한 후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로 보셨습니다(마 15:24). 하나님은 누가 유대인이고 누가 아닌지 아십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에는 누가 포함될까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에 78번 나옵니다(“이스라엘인”이라는 단어를 포함하면 더 많이 나옵니다). 이 중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두번은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하나는 로마서 9장 6절이고, 다른 하나는 갈라디아서 6장 16절입니다. 과거에 대체신학의 지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교회를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로 갈라디아서 6:16을 고수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일까요?


“이 규례를 행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RSV)

또는

“이 규례를 따르는 모든 자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NIV).


만일 우리가 원어에서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내용을 살펴본다면 이런 번역들에서 핵심적인 그리스어 단어가 누락되었음을 봅니다.


καὶ ὅσοι τῷ κανόνι τούτῳ στοιχήσουσιν, εἰρήνη ἐπ᾽ αὐτοὺς καὶ ἔλεος, καὶ ἐπὶ τὸν Ἰσραὴλ τοῦ θεοῦ.


문자적 번역: 그리고 누구든지 이 규례가 기본(기본 사항 준수)이 되는, 그들에게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헬라어 본문은 바울이 그 길을 따르는 자들과 또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자비를 선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본문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방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집을 축복하길 원했음을 의미할 수 없었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훨씬 덜 일반적인 방법의 문법 이해를 선택했고, 두 가지를 구분 없이 하나로 묶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흔한 "그리고" 또는 "또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καὶ"의 표준적 의미를 유지해야 하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대체신학이 붙드는 마지막 지푸라기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마지막 때에는 신부가 둘이 아니라 하나일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구별되는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도 구별되며, 메시아 안에서 우리는 함께 "한 새 사람"이 되어(엡 2:11-22),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동일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신학의 종말

따라서 대체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일한 구절을 주의 깊게 분석하면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스라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대체신학은 로마서 9-11장을 읽을 때 치명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성경 전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 죄와 우상 숭배에도 불구하고 신실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묘사하고 있으며, 신약 성경에서 바울은 지금도 동일한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다윗의 깊은 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언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바울이 분명히 가르친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물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 중이며 우리는 아직 최선의 부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9-11장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두 명의 이집트 자매는 그들의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반유대주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비싼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메시아닉 유대인 신자들을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감격했습니다. 반유대주의가 만연한 나라에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의식적으로조차 매우 반이스라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으로, 그들을 박해한 사람들을 "사악한 유대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교회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무지와 맹목의 구름 아래서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은 점차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죄에 깊이 빠져 있을지라도(많은 나라들처럼), 우리가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남아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이 장들에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이 어떻게 온 땅의 족속들을 위한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과 큰 부요를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끝을 향해 꾸준히 나아갈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위한 그분의 계획과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체신학의 오류가 폭로되고 반유대주의적 허위가 폐기될 때입니다. 시온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요?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선택받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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