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4-19).
모든 기독교 신앙의 최우선 순위는 예수님의 신성을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자 창조주에서 낮은 지위의 피조물로 "강등"되셨습니다. 이러한 종교 집단의 "계몽된" 지도자들은 종종 특정 구절의 원래 그리스어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또는 의미하지 않는 바)와 교회가 2천 년 동안 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를 파악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은 명백하게 확증된 몇 구절(예: 요 1:1)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그의 신성이 암묵적으로 추측되는 수십 구절에도 의존합니다. 그러한 구절 중 하나가 바로 에베소서 3장 14-19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지식을 능가하는 것을 알게 되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유한한 존재가 어떻게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바울이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고, 신성모독죄를 짓지 않고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성경 전체에서 선지자나 천사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하는 구절이 단 하나라도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만이 무한한 사랑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향한 예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진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제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유일한 진실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죄에 대항하는 능력과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망을 줍니다. 이것은 제게 이 무한히 넓은 우주에서 제가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확신시켜 줍니다.
그래서 그들이 요한복음 1장 1절이 원래 그리스어로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에 대해 웅변을 늘어놓는 동안, 우리는 아이들이 "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라고 찬양할 때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진정한 성경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