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마 2:19-21).
아랍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사역에서 이스라엘을 성지라고 부르는 것이 항상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적당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소유권을 부여하거나 소위 점령을 정당화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불필요하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그리스도께 인도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불필요하게 감정을 건드리기를 원치 않는 마음을 온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불쾌한 용어들이 성경적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마태는 이 땅이 유대인의 소유가 아니었을 때에도(로마가 점령한 땅이었습니다!) 이 땅을 “이스라엘 땅”(두 번!)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로마인들이 도시를 폐허로 만든 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왕국의 수도를 "예루살렘"(아엘리아 카피톨리나나 알꾸드스가 아님)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편할지라도 올바른 용어는 여전히 하나님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정치와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대 민족이 계속해서 포로로 잡혀가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계속해서 “이스라엘 땅”이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가장 사랑스러운 방법은 그들이 그들의 가치, 도덕, 세계관을 성경적 진리로 재정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마음을 포함한 인간의 마음은 철저히 거짓되기 때문에(렘 17:11 참조), 진리는 늘 불쾌하고 항상 상처를 주지만 진리로 인한 상처는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려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의 영원한 진리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기 위해 사용되었던 부러진 팔다리를 다시 교정함으로써 회복됩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가장 사랑스러운 방법은 그들이 그들의 가치, 도덕, 세계관을 성경적 진리로 재정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마음을 포함한 인간의 마음은 철저히 거짓되기 때문에(렘 17:11 참조), 진리는 항상 상처를 주고 항상 상처를 준다. 그러나 진리로 인한 상처는 부수려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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