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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만회하기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행 12:1-2, 11).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이야기를 비극(슬픈 결말)과 희극(행복한 결말) 두 가지 범주 중 하나로 나누었습니다. 만약 선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해야 하시는지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우리 삶의 줄거리 구조에서 비극과 희극을 모두 수용하지 않는다면, 언뜻보기에 하나님께서 경건한 성도의 부당한 죽음을 허용하는 선택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매우 낙심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바로와 비슷한 폭군의 손에 야고보가 죽는 것을 허락하셨고, 기도하는 교회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방법으로 베드로를 구출하기로 선택하셨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치료하시고 다른 사람들은 암과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을 허락하실까요?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모든 신자들에게 이 모든 비극들을 가장 확실한 해피 엔딩인 구원 이야기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 지혜의 완벽함에 대해 감사하며 영원을 보낼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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