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 원포이스라엘 (Admin)
- 2021년 11월 4일
- 1분 분량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필레오]가 병들었나이다 하니”(요한복음 11: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아가파오]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한복음 13:23).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필레오]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요한복음 20:2)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아가파오]가 베드로에게 이르되"(요한복음 21:7).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아가파오]가 따르는 것을 보니"(요한복음 21:20). 만일 우리가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예수 사랑하심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 저자들 중 요한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은 자신에 대해, 한 번은 나사로에 대해). 또한 할 수만 있다면 그는 하늘에서 성경에 두 가지 종류의 사랑 즉, 하늘의 사랑(아가페)과 질적으로 낮은 인간적인 사랑(필레오)이 있다고 주장하는 많은 설교자들과 교사들의 가르침을 막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신학과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묘사하는 다섯 구절 중 두 구절에서 요한은 그것을 철학적 사랑으로 묘사합니다(11:3; 20:2). 그들에 따르면 이 사랑은 다른 세 구절보다 질적으로 열등하거나 덜 "신적"인 사랑입니다(요 13:23, 21:7, 21:20). 요한은 그 신화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철학적인 사랑으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필레오]"(요 5:20)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여기 요점은 무엇일까요? 디지털 자원이 많고 훌륭한 책과 주석이 넘쳐나는 현대 기술의 시대에, 특히 우리 각자가 실제로 원어를 찾아서 확인할 수 있는 이때에 신학적 주장을 하는 모든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가페적 사랑과 철학적인 사랑의 예는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좀 덜 해로운 실수 중 하나이지만, 히브리어 어원 찾기 운동에서 원어를 남용하면서 성경 구절을 완전히 자신의 생각으로 왜곡하는 예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다음 말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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