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에 2:8, 16).
성경적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성경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어린아이가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을 그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과 끊임없이 비교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적 세계관은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삶을 "성경 영화"의 맥락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삶의 상황과 성경적 선조들의 삶 사이의 유사점을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스더의 저자는 성경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의 모범이 됩니다. 에스더가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에 페르시아 왕에게 끌려가지만 민종적 정체성을 감추어야 했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에스더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전에 어디서 보았을까요? 네 그래요! 에스더와 모르드개 이야기는 그에게 이집트의 아브람과 사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그 저자는 우리도 이러한 유사점을 볼 수 있도록 글을 썼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이주를 가고(창 12:10);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유배 중입니다(에 2:6-7). 사래는 아름답고(창 12:11); 에스더도 아름답습니다(에 2:7). 사래의 미모 때문에 그녀는 바로의 집으로 끌려가고(창 12:14-15); 에스더의 미모 때문에 그녀는 왕의 집으로 끌려갑니다(에 2:8). 아브라함은 그녀의 덕에 잘 되어서 종들을 얻었고(창 12:16); 에스더는 잘 되어서 종들을 얻었습니다(에 2:9), 아브람은 사래에게 그녀의 정체를 숨기라고 명했고(창12:12-14), 모르드개 역시 에스더에게 그녀의 정체를 숨기라고 명했습니다(에 2:10, 20).
이 모든 것이 과거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유사하기 때문에 하만의 음모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아브람과 사래를 바로의 손아귀에서 구해내셨던 것처럼,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해낼 방법을 찾으실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야기를 성경적으로 보면 지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과거에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의 GPS를 통해 미친 세상의 스토리라인에서 우리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그의 손 안에서 안전하게 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인과 페르시아인에게서 우리 백성을 구출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믿음과 확신으로 우리가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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