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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타작 마당에 세워졌습니다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그 땅에 거하실 곳을 이미 선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신 12:5)


그 장소를 선택한 이유

그 시점에서 그 위치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하나님은 그곳을 정하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창세기 22장에서 그 곳에 예언적 표지를 남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던 모리아 산입니다. 하나님의 쓰라린 마음의 산입니다. 사실은 시온은 "표시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신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 모든 일은 다윗이 심각한 곤경에 처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전염병이 이스라엘에 퍼졌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삼하 24:15-16)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삼하 24:24b-25)


다윗 왕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 땅을 공정한 가격으로 공평하게 구입했고 그곳에 최초의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성전이 세워졌었고 오늘날에는 바위 돔 사원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타작의 중요성

다윗 왕이 그 타작마당을 구입하게 된 배경은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하는 죽음의 천사를 막을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믿는 자들로서 이 연결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곳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의 우주적 장소이자 사망의 권세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하지만 타작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타작은 본질적으로 겨에서 밀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은 성경 전체에 걸쳐 여러 번 나오는데 이 농사짓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다.

타작의 주제는 성경과 유대 사상 전반에 얽혀 있습니다. 시편이 어떻게 시작되나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겨를 비유하여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는 노래로 시작됩니다. 이 시편은 “복 있는 자는”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의 팔복에 나오는 표현과 매우 비슷합니다. 죄인과 연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1:3-5)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다른 운명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그의 책을 같은 그림으로 마무리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말라기 4:1)


세례 요한은 말라기가 중단한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유대 사람들에게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지만 이것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타작하실 예수님의 주권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쭉정이에서 밀을 선별하는 모티브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양을 먹이고자 하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눅 22:31-32)


우리의 파괴를 노리는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메시아가 우리 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응원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환난의 때에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시는 도움이십니다.

예수님은 고난받는 종으로 오셨으며, 우주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가장 순수한 이타적 사랑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은혜 위에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말했듯이, 복음은 영웅이 악당을 위해 죽는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죄 많은 기독교들을 위해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무신론자, 마녀, 불교도, 성소수자 공동체의 사람들(그리고 제가 놓친 다른 모든 어휘들), 푸줏간 주인, 빵 굽는 사람, 촛대 만드는 사람… 누구든 죄를 회개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환영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 곧 메시아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구원하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롭게 경고하신 대로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노래들이 선언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의로운 심판,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마침내 악이 끝나고 영원히 처리될 것입니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 13:40-43)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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