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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산과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증오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요?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분노의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젊은 메시아닉 커플 야론 리신스키(28)와 그의 약혼녀 사라 밀그림은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라고 외치는 한 남성에게 근거리에서 총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중동 전역에 대한 마음을 가진 평화주의자들이었고, 워싱턴 D.C.에서 미국 유대인 의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고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지만, 2023년 10월 7일 테러 직후처럼 이미 이 냉혈한 살인에 대한 정당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사람들은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비난할 방법을 항상 찾아낼 것입니다. 제정신인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비이성적으로 보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시나트 시나이(שנאת סיני 시내산 증오): 시내 산 기슭의 증오의 뿌리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 것은 유대교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가 중요한 사건인 것과 비슷합니다. 오늘날 이 율법 수여는 애굽으로부터 나온 지 7주 후인 칠칠절(샤부옷)에 기념됩니다. 왜 율법을 받은 것이 이 모든 기간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만 미움을 받게 했을까요?


탈무드에 나오는 많은 분량의 랍비 논의에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내용은 안식일서에 단 한 줄로 나와 있습니다. 이 논의의 맥락은 반유대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내산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자 중 한 명이 랍비 카하나에게 물었습니다: "그 산의 이름이 시내산인 이유에 대해 들었습니까?" 랍비 카하나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기적[נסים 니심]이 행해진 산이기 때문입니다." 현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적의 산, 즉 니사이산이라고 불렸어야 합니다." 하지만 랍비 카하나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좋은 징조[סימן 시만]를 가져다주는 산입니다." 현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징조의 산, 즉 하르 시마나이라고 불렸어야 합니다." 랍비 카하나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가다를 공부하는 랍비 파파와 랍비 여호수아의 아들 랍비 후나 앞에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당신이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랍비 히스다와 랍비 후나의 아들 랍바가 말했지요: "그 산이 시내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 열방에 대한 증오[שנאה 시나]가 이 산에 내려앉았기 때문입니다." (사바트 89a)


현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것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을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시나트 시나이: 세상의 증오를 불러일으킨 신성한 사건.

 

저를 판단하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만이 저를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쓰인 그 촌스러운 문신들을 여러분이 보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은 거듭나지 않은 인류가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는 자로서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심판의 날에 대한 생각을 저울질 할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히 10:31)

아무도 심판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책임을 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사실 그 기준들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준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줍니다.

십계명은 주어진 지 거의 3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돌에 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도덕적 잣대를 쥐고 ​​계신 분임을 상기할 때마다 계속해서 우리의 양심을 찔러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양심을 달래기 위해 온갖 정신적, 도덕적 수완을 부리며 세상(하지만 아마도 주로 자기 자신에게)에게 자신이 "선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을 봅니다. 아무도 다르게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잊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는 눈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으로 돌아오면서 그것은 더욱 확실해집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화가 아니며,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디에도 가지 않으실 것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방은 분노하고 증오합니다.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에 예수님이 바울에게 주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은 주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하셨듯이(행 9:5), 시편 83편에서도 같은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킨젤과 코로트키가 밝힌 교차대구형태에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하나님의 원수들과 동일시합니다.

83:2 (A) 하나님의 원수들 “보소서, 주의 원수들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83:4 (B) 이스라엘의 원수들 “…주의 백성을 대적하여…”

“…주의 숨기신 자들을 대적하여


83:5 (B') 이스라엘의 원수들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83:6 (A') 하나님의 원수들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킨젤과 코로트키는 “이 시편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반복되는 주제를 더욱 발전시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그의 택하신 백성을 공격하는 자들과 똑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이 여러 시대에 걸쳐 직면했던 수많은 집단 학살 시도를 열거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는 하나님에 대한 증오와 동일시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피의 언약을 맺으셨을 때(출 24장), 이곳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 위에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26:16-19).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지니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시내산에서 우리의 이름들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증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표출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상기시킵니다. 이것이 바로 “시나트 시나이(시내산 증오)”입니다. 그 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으로 인해 생겨난 증오입니다.


이는 한 민족이나 한 세계관, 또는 좌파나 우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는 모든 곳에서 발견됩니다. 무슬림 사회에서도 만연합니다. 여러 국가뿐 아니라 유럽의 자유주의 엘리트층 사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극우 파시즘과 극좌파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부자든 가난한 자든, 토착민이든 이방인이든, 교양 있는 자든 동화된 자든,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그 증오에는 논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내산 증오는 하나님,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길,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악마적인 증오입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시 2:1-3)


여러분 보시나요? 그들은 속박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의 제약을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일입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으실 것이기에, 열방은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에 분노합니다.


투사과 비난, 죄책감에 대한 우리의 반응

"지구의 4분의 1을 식민지화한 사람들이 서구의 아이비리그 학생들에게 자신들은 반식민주의자라고 설득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누군가가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가 발동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투사입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자신의 악을 투사할 수 있는 빈 캔버스와 같다고 더글러스 머레이는 말했습니다.

은밀하게 세상을 장악하려는 자들은 뉴저지 크기의 작은 유대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이곳의 상황이 얼마나 무질서한지 생각하면 다소 웃깁니다. 중세 유럽은 이스라엘 민족을 탐욕스럽다고 비난했지만(셰익스피어의 샤일록처럼),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더러운 일을 하도록 강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고, 그들은 빌렸다고 생각되는 돈을 갈취하고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계속됩니다. 머레이는 이스라엘을 향한 어떤 고발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그 범죄에 대한 죄잭감이 있는 자는 그 고발자라고 주장합니다.


서구 사회는 사람들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악한'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맹렬히 회피하는 가운데, 마치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듯한 미덕 과시 신호를 받고 있습니다. 정의를 추구한다는 위장의 시기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을 혐오하게 만들고, 그분의 주권적 선택권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조차도 완벽하게 사랑하시고 정의로우십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동의 없이도 행동할 모든 권리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천사는 아닙니다. 결코 그랬던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민족이라는 개념과 그들이 대표하는 율법 자체가 사람들의 양심을 짜증나게 합니다. 태초에 아담은 하와를 탓했고, 하와는 뱀을 탓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탓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묻고자 문을 두드리실 때, 손가락들은 사방을 가리킵니다. 우리 자신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쉬운 희생양이지만, 우리 모두는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무죄하지 않습니다.


지적하는 바른 방법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갚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불하기 위해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죄를 속죄하는 수단으로 희생 제도를 주셨습니다. 시내산 언약에는 "감옥에서 자유롭게 나오라"는 카드, 즉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에서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이르기를 우리가 죄를 범하여 패역하고 악하게 행하였나이다 하거늘… 그들이 스스로 깨닫고 … 온 마음과 온 뜻으로 …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왕상 8:46-48, 52-53 - 간략하게 요약).


이것이 시내산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은혜와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여러 가지 결함(실제적인 것과 생각하는 것 모두)을 지적하여 우리의 죄책감을 비껴나가게 해주시는 대신에,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에게 새롭고 깨끗한 양심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갚을 필요가 없도록 기꺼이 자신을 속죄양으로 삼으셔서 우리의 빚을 갚으셨습니다.

신약성경(새언약)의 히브리서에는 메시아께서 예레미야 31장에 약속된 새롭고 더 나은 언약을 가져오셨다고 말합니다. 29-30절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과는 다른 새 언약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새롭고 산 길을 만드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내산 증오, 곧 책임을 회피하는 죄책감에 대한 해독제는 죄 용서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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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최고의 방법

THE BEST WAY TO BLESS ISRAEL IS WITH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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