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은 하나의 개념일까요 아니면 지리적인 지점일까요? 아마도 둘 다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당신에게로 구속하실 지리적 위치를 표시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애굽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이미 자기 이름이 거할 곳을 택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신 16: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산을 따로 정해놓으셨지만 그 당시에는 그 위치를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곳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에덴동산에서도 결정되고 언급되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이 여러 면에서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것이 계획되고 예견되었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택하실 곳을 아주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시온: 하나님이 표시하신 곳
지정된 그 장소에서 거행되어야 하는 세 개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샤부옷(칠칠절), 수콧(초막절)이였습니다. 절기는 모두 예수님과 그분의 구원 계획을 가리킵니다. 그토록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인 시온 산이 우주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 사건이 아니라 여러 사건의 현장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중대성의 동심원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이 자신의 희생을 위해 나무를 등에 지고 같은 언덕을 오르며 천사가 개입하는 것을 봅니다. 이후 다윗 왕 때에 하나님 사자의 진노의 손이 바로 그 곳에서 멈췄습니다. 그 다음에는 죽음 자체가 철저히 패하게 되는 갈보리가 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메시아가 영광 중에 돌아올 도시이며 그곳에서 온 땅을 다스리고 통치할 것입니다.
시온이라는 단어는 구원, 대속, 왕국이라는 메시아적 개념을 불러일으키지만 성경이 실화이기 때문에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솝 우화처럼 교훈적인 동화 모음집이 아닙니다. 고고학적 발견의 꾸준한 흐름이 증언하듯이 역사와 지리는 실재합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예언의 말씀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문자 그대로 정확하기를 멈추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땅에 뿌리를 둔 성경 이야기의 명백한 민족 중심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약속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자기 중심적 버전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그분의 택하신 종을 땅의 모든 족속을 구속하는 그릇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여호와의 종”은 때때로 메시아를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기도 하며, 때로는 선지자 자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시온은 하나님의 택한 장소, 즉 그분의 본부, 그분의 작전 기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위한 당신의 국제적 구조와 구출 계획을 실행하신 곳은 시온이며, 그분의 세계적인 통치와 왕국 통치를 수립하실 곳도 시온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 언약, 다윗의 확실한 긍휼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 132:13).
시온: 구속의 진원지
빌 스코필드(Bill Schofield)는 전체 복음이 예루살렘과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은 단지 죄로부터 개인적인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분 자신에게로 구속하시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그분의 십자가는 그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파괴된 성전과 별 관련성이 없어 거룩한 도시를 뒤이어 발전된 기독교 신학의 많은 부분에서 종종 잊혀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52:7-10)
기쁜 소식에 관한 이 짧은 구절에는 시온/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이 네 번 있고, 이 장 시작 부분의 처음 두 구절에는 다섯 번 더 나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갈보리에서 얻은 구속과 장차 올 구속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시온에 기반을 두고 땅 끝까지 이를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좋은 소식 또는 복음이라는 단어는 베소라(בשורה)이고 메시지를 가져오는 사람은 메바세르(מבשר)입니다. 학자 앤드류 스팔렉(Andrew J. Spallek)에 따르면 이 단어에는 구체적으로 좋은 소식이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말은 원래 전투에서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와 연결되었습니다. 그것은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복음은 전쟁터에서 오는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특히 시온에 좋은 소식( מבשרת ציון)을 전하는 자의 개념은 이사야서 40장에서 선지자가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로 시작하는 말씀입니다. NKJV는 이것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사 40:9)
ESV는 다음과 같이 옮깁니다.
“좋은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예루살렘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여…”
예루살렘이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이든 소식을 받는 자이든(또는 둘 다) 복음은 시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61장은 이것을 확증합니다: 메시지는 시온에서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속 그리고 나중에 완성과 온전함에 이르는 구속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승리를 거둔 곳이며, 하나님의 왕국 통치가 열국으로 흘러가는 곳입니다.
…할 때까지 이것은 단지 시간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때까지"라는 단어가 사용된 중요한 부분이 여러 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에서 한 가지 일이 다른 일을 따르고 모든 일이 한 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시간이 창조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인들이 파괴하기 전까지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시온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하여 단어 “때까지”가 나타나는 몇 가지 중요한 시간들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눅 21:24b)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지만, 극적으로 그분의 거룩한 성이 더 이상 “이방인들에게 밟히지 않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분은 “이방인의 때”를 유한한 기간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로마서 11장에서 다시 이것을 보게되는데 바울이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유대인들이 어떻게 제한된 시간 동안 복음에 대해 부분적으로 강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말할 때 “때가지”가 나타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5-29).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몰아낼 날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두 팔을 벌려 주님을 환영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셨듯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성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게 버려졌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마 23:37-39).
위대한 왕의 도시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슥 2:10-12).
그가 임마누엘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오셨을 때 분명 스가랴 2장의 예언 중 일부는 성육신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다시 예루살렘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유대인의 왕이시지만 그 이상으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계 19:16). 온 땅의 왕이 예루살렘을 선택하셨고 다시 선택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4-35)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의미한다는 생각으로 성경 읽기를 시작합시다.” A.W. 토저
스가랴 8장과 이사야 62장은 또한 하나님이 시온에 대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느끼시는지, 그리고 도시에 대한 그분의 계획이 미래에도 계속된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분이 그곳에 거하시고 그곳에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그곳으로 돌아가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땅의 왕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찾으러 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이사야서 2장과 미가서 4장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두 장 모두 평화의 메시야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이 시대에는 많은 열방이 시온으로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미 4:1-2).
"율법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라는 이 마지막 문구는 우리 ONE FOR ISRAEL에서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길에 대한 이해로 이 땅을 채우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경이로움을 감사하며 그것을 풀어내도록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능하게 하심을 따라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떤 노력도 메시아가 돌아올 때 나타날 일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보좌에서 통치하시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구속되어 우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쓴 것처럼 이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전 세계를 위한 부요함… 그것은 비유적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현실적인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은 다가올 세상의 구속의 진원지이며 메시아가 통치할 곳입니다.” – 빌 스코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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