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행 11:27-29).
요한복음(요 4:21)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예루살렘을 세상의 다른 도시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가보가 "천하에 큰 흉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초대 교회의 눈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마태는 예루살렘의 중요성이 소위 예수의 부활에 의해 "대체"된 지 수십 년 후에 그 도시를 "거룩한 도시"(마태복음 4:5)라고 부릅니다. 누가는 예루살렘 바로 외각의 실제 위치를 가지고 주님의 미래 재림에 대해 특별히 언급합니다(행 1:11-12; 슥 14:4 참조). 신약성경에 따르자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에서 단절된 기독교 영성은 과거와 관련하여 감사함이 없고, 미래에 하나님께서 그의 복을 부어주실 방식에 대한 비전이 없는 영성입니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6-27).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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