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이야기의 뒤에 숨겨진 것
- 원포이스라엘
- 3월 30일
- 1분 분량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 15:20, 22, 24).
며칠 간 이 구절을 묵상한 후에 저는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언급하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에 몸을 기대고 입맞춤을 퍼부었습니다(눅 15:20). 이는 요셉이 형제들과 축복의 재회를 말하는 창세기 45:14-15의 그리스어 번역본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아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라는 아버지의 명령은 단어와 줄거리 구조에서 파라오가 요셉에게 왕의 옷을 입히는 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창 41:42).
"내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어버렸던 것을 찾았노라"(눅 15:24)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의 눈물로 가득 찬 야곱의 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창 46:29-30).
이 비유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버지의 기쁨과 요셉을 죽음에서 다시 맞이한 야곱의 기쁨을 비교함으로써,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요셉과 탕자의 기쁨을 비교하십니다. 이 탕자 같은은 세리와 죄인들을 거부하는 것은(눅 15:1)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을 질투하고 악의적으로 거부했던 요셉 형들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창세기 37장). 그리고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 낙오자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요셉의 아들 메시아(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반영합니다. 죄인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