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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슬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때때로 고대 유대 해석가들은 성경에 대한 관찰에서 지나치게 창의적입니다(오늘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처럼). 어떤 때에는 그들의 통찰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감적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미드라쉬 아가다는 세 개의 단어로(히브리어로 세 단어) 설명합니다. "하느님이 그를 위해 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인들은 하나님의 질문 “네가 어디에 있는냐”에 주목했습니다. 이 질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애가서의 첫 단어와 철자가 똑같습니다: "어떻게?” (איכה). 하나님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는 아담의 죄의 결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아시고 그것에(즉, 예루살렘의 멸망) 대해 슬퍼 하셨습니다. 이 해석은 원저자가 의도했던 표현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진리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께 고통과 슬픔을 주게 됩니다(창 6:6; 엡 4:30).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창조의 시계 태엽을 감아놓고 물러서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정말 깊이 그리고 진실하게 돌보셨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것을 아는것은 우리가 자신의 죄에 대한 바른 태도를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위대한 신학자 찰리 브라운의 말처럼 우리는 "좋은 슬픔"을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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