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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 여러분도 저처럼 가인이 정직한 실수를 저지른 후 하나님께 꾸지람을 듣고, 조금 격분하게 된 후 질투심에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이 이야기에서 가인에게 다소 안쓰러운 미안함을 느꼈는데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그의 경험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실패하는데, 이 이야기는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의 의심과 함께 울려퍼집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인 것에 대해서 합당한 형벌을 받았지만, 그가 홀로 세상을 떠돌게 된 것이 저는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가인 사이의 대화에 대한 실제 본문을 볼 때, 상황은 처음에 나타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그 이야기는 제가 처음에 놓쳤던 구원의 표로 끝납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본문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보다 아벨의 제물을 더 기뻐하셨다는 것을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알려줍니다("바라봄" 또는 "존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를 사용). 하지만 여기에 책망이 전혀 없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은 한 희생이 다른 희생보다 낫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기분이 상하고 화를 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꾸지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그가 빠져든 분노를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연민과 부성적 격려를 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선택한 것을 알게 하시고 잘 선택하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할 수 있다, 아들아!”


그러나 가인은 그 좋은 충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의 분노와 질투가 자신을 이기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격체로 기뻐하지 않으시며 아벨을 더 좋아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었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니라 그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사랑하셨고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인은 유혹을 이겨내는 대신에 공격과 분노가 그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가인의 문앞에 분노가 웅크리고 있었고, 가인은 그것을 환영한 것입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여기서도 하나님은 분노나 거부를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가인에게 고백할 기회를 주심으로써 그가 깨끗해지도록 거의 간청하고 계십니다. 가인은 여전히 ​​화를 내며 침울해 합니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제 형벌이 내려지는데 그 범죄는 살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수준 이하의 희생 제물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적하고 싶으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죄악스런 분노가 동족 살인으로 전락하자 하나님은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땅을 방황하며 땅을 경작하기 위해 분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가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듣습니다! 그의 대답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서 얼굴을 숨기는 것과 죽음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롭게도 하나님은 그를 바로잡으시고 안심 시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이 낮은 지점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가인에게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십니다. 가인이 생각하는, 화가 나서 벌을 주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우리를 벌주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는지요? 이 전체 대화를 통해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그것을 가져오셨다고 잘못 믿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하나님이 그에게 선하고 사랑이 많으며 상냥하신 분이 아니라 그 반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의미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정말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도 이것을 봅니다. 뱀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잘못 이야기합니다.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두려움과 불안으로 그들에게서 정보와 지식을 숨기려 하신다고 확신 시킵니다. 마치 인간이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것처럼… 마치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위협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실제로 뱀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에게 받아 들여지는 희생, 즉 피를 흘려야 할 필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구원에 대한 정보와 구원이 어떻게 메시아 예수님의 피의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지에 대한 정보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이 단계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몇 가지 기본 사항을 가르치기 시작하실 뿐입니다. 그것은 초보자를 위한 희생제사였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열망은 인류에게 지식을 전하는 것 이였지, 우리에게서 지식을 빼앗아 가려 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벅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이 가인과 아벨을 교육하시기 위해 작은 스텝을 취하셨을 때, 가인은 기분이 상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은 희망을 보여줍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에녹이라는 이름은 “교육” 또는 “훈련”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끝날 무렵, 가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의 유익을 구하시는 사랑 많은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는 너무 빨리 그를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이 이야기가 보여주듯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선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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