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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이스라엘 블로그&아티클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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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5장 1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는 기적적인 능력을 찬양하는 이사야 25장의 노래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패턴을 따릅니다. 이사야 11장에서 하나님의 예루살렘 통치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사 11:9 참조)이 찬양의 노래(사 12:1-6)로 이어지는 것처럼, 이사야 24장(23절)에서 하나님의 예루살렘 통치를 선포한 뒤에는 또 다른 찬양의 노래(사 25:1-12)가 이어집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이사야 2-12장에서 그분은 방탕한 백성의 마음을 정복하시고, 이사야 13-24장에서 그분은 이스라엘의 모든 원수들을 그분의 전능하신 뜻에 복종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5장 1절의 찬양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우리 메시아의


이 분이 당신들의 하나님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마 21:1, 12). 마태는 독자들이 히브리 구약성경에 익숙하여 스가랴서 마지막 장에 대한 자신의 암시를 알아챌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감람산은 구약성경에서 단 두 번만 언급되는데, 두 번 모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오시는 것을 언급하는 구절에 나옵니다(슥 14:4). 마태가 감람산을 언급한 후 몇 구절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상인들을 내쫓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스가랴 14장 마지막 구절,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집에 가나안 사람[상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21절)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나안 사람"이라는 단어는 성경 히브리어에서 "상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잠언 31:24; 스가랴 11


하나님 앞에 정결한 마음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7-8, 16, 18, 23). 시편 50편은 레위 지파의 선지자이자 음악가인 아삽이 지은 책망의 시입니다(대상 25:1-2, 6; 대하 29:30; 35:15 참조). 이 시편에서 하나님은 그분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제물을 강조하고(시 50:14, 23),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와 같은 종교적 행위를 악행을 숨기는 구실로 삼는 백성들을 책망합니다(16-22절). 죄의 목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우리를 진정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시 49:5-6, 16-17) 시편 49편은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묵상하며 우리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도록 이끄는 지혜의 시입니다. 앞선 시편들(시편 45-48편)에서 고라의 자손들은 메시아 왕과 새롭게 될 예루살렘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겼습니다. 이 소망이 완전히 실현될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을 신뢰하고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가치이며, “죽을 때까지”(시편 48:14) 그들을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49편에서는 시편 48편의 마지막 구절이 시편 전체의 중심 주제로 부각됩니다. “죽음”이 세 번(시 49:10,


슬픔에서 기쁨의 성으로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 … 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 (셀라)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시 48:1-3, 8-9) 시편 46편부터 48편까지는 많은 주제를 공유하며 선명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들에서 거룩한 왕은 위대하시며(시 47:2; 48:2) "하나님의 성"에 영원히 거하십니다(시 46:4-5; 48:1, 48:8). 그분은 "피난처"(시 46:7, 11; 48:3)시며 "만군의 여호와"(시 46:7, 11; 48:8)이십니다. 이 시편들은 기쁨이 가득한 찬양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시 47:1,


시편 47편의 거룩한 왕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는 경외받으실 분이시니 온 땅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왕이시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니 아름다운 시로 찬양하라! 하나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며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 47:2, 6-8). 문학에서 문맥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시편 42-49편, 즉 고라 자손의 시들이 시편집 제2권의 서두에서 하나의 중요한 단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면, 하나님은 언제나 왕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라 자손은 시편 44:4에서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선포합니다. 시편 45-46편에서 적국들이 정복된 후, 시편 47-48편에서 이스라엘과 열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시 47:2, 6-8). 이러한 맥락에 따라 시편 45편에서도 하나님(엘로힘)은 왕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시 45:6). 이러한


메시아적 소망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레 26:6). 레위기 26장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비전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해로운 짐승이나 원수에게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은 에덴동산으로의 회귀를 의미했습니다. 레위기 26장에 따르면 에덴동산에 대한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순종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레 26:2-3), 선지자들은 어떤 기적적인 개입 없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축복의 충만함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선지자들은 레위기 26장 6절에 나오는 이 조건부 약속을 미래의 무조건적인 현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렘 30:10; 46:27; 겔 34:28; 39:26; 미가 4:4; 스바냐 3:1


내려놓음의 평화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 46:10-11). 시편의 의미 있는 배열 안에서, 시편 44편은 “전의 모습”(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아 우리가 전쟁에서 패배함), 시편 46편은 “후의 모습”(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전쟁을 그치게 하심), 그리고 시편 45편은 “원인”(하나님의 메시아가 육신으로 오셔서 그의 신부를 그의 궁전으로 초대하심)을 나타냅니다. 시편 46편은 종말론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으로서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메시아 왕은 에덴동산과 같은 도시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실 것이며, 열방은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에, 시편 46편에서 보여주는 미래의 평화는 세상이 여전히


왕이 만들어내는 변화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시 44:23-26). 어휘의 측면에서 시편 44편과 46편은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상황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시편 44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하지 않으셔서 그들이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다고 탄식합니다(시 44:9). 반면 시편 46편에서는 하나님이 만군의 주이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원수의 무기를 멸하셔서 땅끝까지 전쟁을 그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시 46:9). 시편 44편 26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일어나라”고 부르짖고, 시편 46편 10절[11]에서는 그분이 온 땅에 높임을 받으셨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44편 26절에서 시편 기자는 멀리


다시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5). 시편 42편과 43편에서 우리는 영감받은 시편 기자가 자신과 격렬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세 번이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시 42:5, 11; 43:5)라고 묻습니다. 왜 그는 낙심했을까요? 그의 원수들은 응답이 없는 하늘에 대한 그의 부르짖음을 계속해서 조롱했습니다. 그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시 42:3, 10)라고 말할 때, 그는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시 42:9, 10)라고 묻기 시작했고, 심지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43:2)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메마른 영혼과 멀리 계신 하나님에 대한 느낌(시 42:1-3)을 고려할 때, 시편 42편의 자기 성찰, 즉 “어찌하여


숨겨진 죄의 대가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시 39:2-5) 시편 38편과 39편의 밀접한 관계는 시편의 지적인 구성 및 문학적 맥락 안에서 각 시편을 묵상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시편 39편은 다윗의 죄와 그것을 숨기려 한 결과에 초점을 맞춘 시편 38편을 이어갑니다. 두 시편 모두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한 대가로 큰 고통을 받습니다(시 38:3, 18; 39:1). 다윗은 내면의 고통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어서 자신을 "말 못하는 자"라고 묘사합니다(시 38:13;
![[오늘의 묵상] 예배에서 하나님의 마음 듣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dca9ad306eec472e8c918c5dffc4b884~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dca9ad306eec472e8c918c5dffc4b884~mv2.webp)
![[오늘의 묵상] 예배에서 하나님의 마음 듣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dca9ad306eec472e8c918c5dffc4b884~mv2.jpg/v1/fill/w_316,h_237,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dca9ad306eec472e8c918c5dffc4b884~mv2.webp)
[오늘의 묵상] 예배에서 하나님의 마음 듣기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 ”(시 39:0). 시편 39편의 서문은 매우 독특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한 시편이 두 명의 다른 사람에게 귀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현대적인 비유를 들자면, 여두둔과 다윗의 시편 39편의 관계를 피터 잭슨과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의 관계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 39편을 썼듯이, 톨킨은 반지의 제왕의 작가입니다. 여두둔은 이 시편을 성전에서 사람들이 부를 수 있도록 편곡했는데, 이는 잭슨이 톨킨의 소설을 영화 3부작으로 만든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여두둔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일까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편 39편, 62편, 77편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시편 저자가 우리에게 시편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기를 원하는지 상기시켜 줍니다. 성경에 따르면, 여두둔


부활을 가리키는 시편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시 49:7-9) 시편 49:9은 신약성경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본문적 증거를 제공하지만, 이것이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혜를 얻기 위해 죽음의 결말을 묵상하도록 권유합니다. 14절에서 시편 기자는 “목양하다”라는 동사를 이용한 언어유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생생하고 기억에 남도록 합니다. 동사 “רעה 라아”는 “목양하다”와 “풀을 뜯게 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제럴드 윌슨, NIVAC, 751쪽 참조), 이 구절은 “양처럼 죽음이 스올로 보내질 자들을 목양하리라”라고 번역되거나 “양처럼 죽음이 스올에 보내진 자들의 몸을 뜯어먹을 것이다.” 즉, 그들의 몸을 먹어 치울


순종의 기쁨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 40:4, 6-8) 시편 40-41편은 시편집 제1권(시편 1-41편)의 마지막 시편이므로, 앞부분 시편들의 의미 있는 메아리를 발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편 1권이 “복 있는 사람”(시 1:1)과 그에게 피하는 “복 있는 자들”(시 2:12)로 시작하는 것처럼, “복 있는 사람”(시 40:4)과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복 있는 사람”(시 41:1)으로 끝맺습니다. 이처럼 시편은 진정한 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데 있음을 부드럽게 일깨워


그와 함께 거하기를 갈망함
“다윗의 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 15:1-2). 시편 14편과 마찬가지로 시편 15편도 홍수 시대를 암시하지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시편 14편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내려다보시며 타락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을 보십니다(시 14:1; 창 6:11-12).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1, 3). 그러나 시편 15편에 나오는 사람은 제2의 노아, 즉 “흠 없고 의로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시 15:2와 창 6:9; 7:1 비교). 이 흠 없는 사람과 노아 사이의 연관성은 제사장적 이미지를 통해 더욱 강화됩니다. 노아가 세상의 갱신을 위해 산 위에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쳤던 것처럼(창 8:4, 20-21 참조), 이 흠 없고 의로운 사람도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며 “그의 거


식탁에서 배신당하심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 (시 41:9).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성취되어야 할 성경 구절로 시편 41:9을 인용하셨습니다(요 13:2, 17 참조). 예수님께서 이 구절을 미리 인용하신 것은 제자들과 후대의 요한복음 독자들이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그분이 약속된 메시아임을 알아보고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요 13:19). 다윗이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시 41:4)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시편 41편이 메시아를 예언하는 것일 수 있을까요? 예슈아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시편이 직접적인 메시아 예언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정은 예슈아께서 이 시편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셨는지 완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몇 가지 관찰을 통해 이를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시편 41편은 다윗 왕을


길을 여시는 왕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시 24:3, 7-10) 다윗은 시편 24편에서 “오를 자가 누구인가?”와 “설 자가 누구인가 ?”라는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윗이 세상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24편 2절에서 “건설하다”라는 동사의 사용은 히브리 성경에서 성전 건축을 강하게 암시합니다(왕상 5:17[31]; 6:37; 7:10; 사 44:28; 겔 41:8; 슥 4:9; 8:9; 시 78:69; 대하 3:3; 24:27 참조


의로운 자손을 통한 우리의 승리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 (시 7:1, 3-4, 8, 11) 시편 7편에서 다윗이 자신에 대해 한 말이 사무엘하에 나오는 다윗의 모습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예언적으로 시적인 가사 뒤에 숨겨진 더 위대한 다윗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의 무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구원을 간구합니다. 그러나 시편 3편과 7편에 반영된 역사적 사실들은 다윗 자신의 죄를 드러냅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의 간음과 살인의 직접적인 결과였으며(사무엘하 11-12장 참조, 시 3:0 비교), "구스"에 대한 언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1, 4, 6). 시편 6편에 나오는 다윗의 눈물 어린 기도에서 중요한 진리 하나가 드러납니다. 그가 긍휼과 구원을 간구하는 근거는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약속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편 6편을 더 넓은 문학적 맥락, 즉 시편 3편부터 7편까지, 그리고 앞선 성경 구절들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시편 3편의 서문은 다윗의 고통을 압살롬의 반역(사무엘하 15-18장)과 연결 짓습니다. 그 반역은 다윗이 밧세바와 저지른 도덕적 실패(사무엘하 11-12장)의 더 큰 결과 속에서 전개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분노로 “자신을 책망하지 마시오며”(시 6:1)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


시편에 담긴 부활의 소망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17:9, 11-12, 15) 여러 저명한 시편 학자들은 시편 19편을 중심으로 시편 15편부터 24편까지가 교차 대구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시편 15편과 24편에서 의로운 왕은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오릅니다. 시편 16편과 23편에서 왕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기뻐합니다. 시편 17편과 22편은 원수들이 사자처럼 왕을 먹이로 삼아 덮치려 달려드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시편 18편과 20~21편은 메시아 왕의 약속된 승리를 예고하는 왕의 시입니다. 시편 19편은 그 중간에 위치하며, 왕이 여호와의 율법의


구원은 시온에서 나올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 14:1, 4, 7). 이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자들의 보편적인 어리석음을 폭로합니다. 이 예언적인 시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이전 구절에 대한 두 가지 언급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류가 그분 앞에서 완전히 타락했음을 보았던 노아의 홍수 시대를 떠올립니다(창 6:12-13). 다윗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여 단순히 지역적인 반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타락의 양상을


고통에서 축하로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0-1, 5-6). 시편 23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그 인기입니다. 우리는 문맥 속에서의 의미를 고려하기 전에 먼저 이 시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온전히 읽으려면 앞뒤 시편의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묵상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편 23편은 시편 22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왕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위대한 목자가 시편 기자를 사망의 골짜기로 인도하신다는 고백(시 23:4)은 시편 22편에 나오는 은유적인 짐승들, 즉 황소, 사자, 개가 멸시당하며 무방비한 벌레를 공격하는 모습을 볼 때


말씀의 중요성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 12:2, 4, 6-7). 하나님의 백성과 다윗 왕가에 대한 언약적 약속에 대한 반역이라는 문학적 맥락에서(시 12:6과 삼하 22:31 비교), 시편 12편은 이 싸움을 말싸움으로 묘사합니다. 한편으로 악인들은 “큰 일들”(시 12:3)을 자랑하는데, 이는 곧 여호와의 백성과 그의 메시아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시 12:4; 시 2:3 참조). 반대편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는데, 그분은 일어나셔서 고난받는 백성을 구원하시고(시 12


하나님의 완벽한 타이밍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며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뒤쫓게 하소서”(시 35:4-6) 시편 35편은 시편집에서 계획된 의도를 따라 위치합니다. 이 시편은 감사하는 마음이 갑자기 절망으로 바뀔 수 있는, 여호와와 동행하는 삶의 역설을 강조합니다. 시편 35편은 시편집 1권의 마지막 일곱 편(시편 35-41편, 시편 41:13 참조) 중 첫 번째 시편입니다. 이 일곱 편에서는 다윗 왕조의 메시아에 대한 배신이 주요 주제로 다뤄집니다(시 35:12; 38:20; 41:9). 놀랍지 않게도 다윗과 가까운 사람의 배신은 시편 1권을 시작하는 시편(시 3:0)에도 나타납니다. 다윗의 생애 이야기와 시편에서 예언적 시적으로 재해석된 내용을 통해 가룟 유다는 메시아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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