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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이스라엘 블로그&아티클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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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의 해석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슥 4:4-5, 12-13). 묵시문학에서 꿈과 환상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러한 환상을 받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일관되게 천사의 형상에 의존합니다. 스가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은 양쪽에 두 올리브 나무가 있는 일곱 가지의 금 메노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의 신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스가랴에게 두 번에 걸쳐 그 상징을 설명합니다. “이 일곱은[


그의 눈동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백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결과를 여러 민족에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린다는 것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치는 자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없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결국 모두 이 진리를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이삭이 분노한 에서에게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라고 말했고, 발람이 발락에게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민 23:20)라고 했습니다. 하만의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가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미 7:17-20) 미가서는 토라의 핵심 구절들을 빠르게 인용하고 암시하며 끝맺습니다. 이 구절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독자의 믿음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미가서에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된 하와의 후손(미가 5:2)은 뱀을 물리칠 것입니다(미 7:17; 창 3:14-1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황이 아무리 암


심판에서 은혜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습 3:8-9) 스바냐서는 놀랍도록 은혜로운 반전으로 끝맺습니다. 이는 스바냐 3:9의 “회복”이라는 단어로 나타납니다. 히브리어 단 어 “에헤포크”는 영어로 쉽게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완전한 반전을 의미합니다. 소선지서의 몇 가지 예를 통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욜 2:31)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바꾸고”(암 8:10). 스바냐서에서 놀라운 반전은 하나님께서 열방을 모아 불로 심판하시는 날에 일어납니다. 이 불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정화하는 불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


당신의 삶에서 키가 가장 큰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졌음이라”(습 2:3, 9-10). 스바냐서는 인류를 두 부류로 나눕니다. 겸손한 자(습 2:3)와 교만한 자(습 2:9-10)입니다. 히브리어에서 "겸손"은 어원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낙심 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세, 즉 자신이 종이고 하나님은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교만"은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17, 19-20). 잠언은 새벽녘에 이웃을 큰 소리로 축복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짜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잠 27:14). 더욱 짜증나고 심지어 모욕적인 것은, 깊은 트라우마와 끔찍한 비극을 "이히에 베세데르(יהיה בסדר) ‘괜찮아 질거예요"라는 진심 없는 말로 경시하는 이 세상의 낙천주의자들입니다. 이


다시 선택받다
“그 달 스물네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다시 임하여 이르시되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이르되 내가 하늘과 땅을 흔들고 나라들의 보좌들을 무너뜨리고 열방의 권세를 멸하리라 병거와 그 탄 자들을 쳐부수고 말과 그 탄 자들도 각자 칼에 맞아 쓰러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선언하노라 그 날에 내가 내 종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아 너를 택하여 인장 반지처럼 만들리니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학 2:20-23)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의 후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대상 3:19), “저주받은” 조부의 그림자 아래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날 밤, 하나님은 여호야긴으로도 알려진 고니아 왕을 책망하시며, 그가 비록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인장 반지일지라도 그를 뽑아내어 포로로 내쫓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렘 22:24-30). 이 비유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인장 반지는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데, 예레미야의 말씀은 고니아의 죄로
![[오늘의 묵상] 경청하는 법 배우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lg_1,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webp)
![[오늘의 묵상] 경청하는 법 배우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jpg/v1/fill/w_300,h_225,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webp)
[오늘의 묵상] 경청하는 법 배우기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합 3:1-3, 8)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하박국의 영적인 변화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1:2a) 그리고 구원하지 않으신다고(1:2b) 비난하던 사람에서, 마침내 자신이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3:2, 16) “구원의” 병거를 타고 오시는 여호와를 고대하는 사람으로 변모합니다(3:8). 강포과 불의(1:2-4) 대


그러나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이처럼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구절들로 하박국은 고난에 찬 여정 끝에 기쁨과 소망과 믿음으로 돌아갑니다. 무거운 “짐”(합 1:1)으로 시작했던 이 책은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9)는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여기 선지자의 애가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우리 메시아의 여정과 연결됩니다. 하박국 3장 13절은 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미래의 신적 구원 행위를 가리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


믿음과 현실이 충돌할 때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2-13) 하박국서의 능력은 우리가 감정적 절망과 영적 침체에 빠져 신학적 믿음과 실제 경험 사이에 큰 간극을 경험할 때 위로를 준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하박국의 신앙 위기는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실제 활동과 겉으로 드러나는 무활동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박국은 끔찍한 폭력(히브리어로 폭력은 "하마스". 1:2-3)에 대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과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 벌어지는 정의의 왜곡(1:4


의로운 가지: 위대한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레미야의 환상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렘 22:13-15). 이 장에서 예레미야는 암시적이지만 심오하게 다윗 왕조의 왕들을 다윗 왕과 비교하며 정죄합니다. 다윗은 "모든 백성을 위하여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삼하 8:15)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다윗 왕조의 왕들은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착취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회막에 머무는 동안 백향목 집에서 사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은 백향목 저택에 몰두하여 하나


불평에서 확신으로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합 1:1-4). 하박국서의 영감된 메시지는 “가르침”과 “붙잡힘”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려면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1:1)의 내용뿐 아니라, 선지자가 불신(합 1:2-4, 12-17; 2:1)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도(3:1-19)로 나아가는 개인적인 여정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박국의 승리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 중 하나는 "애가"라고 불리는 고대 기도 형식입니


기억할 가치가 있는 삶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나훔 3:7, 19). 성경에서 도시는 종종 의인화되는데, 여기에서 선지자는 앗수르의 도시 니느웨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도시와 그곳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니느웨가 남길 유산을 생각해 보라고 촉구합니다. 니느웨의 장례식에는 애도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마침내 니느웨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 사람들의 환호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 먼저!”라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나 사회가 남기는 유산입니다. 삶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바친 그런 사람은 진정한 친구 없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죽으면 이용당하고 학대당했던


회복된 다윗의 장막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암 9:11). 아모스는 그의 책 마지막 구절에서 심판에서 회복으로, 파괴에서 재건으로, 흩어짐에서 재모임으로 갑작스럽게 전환하는데, 이는 영화 제작자들이 말하는 “하드컷”과 같습니다. 매우 급작스럽고 대조가 극명합니다. 그러나 비록 아모스의 이러한 전환이 급작스럽지만 토라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언자가 거의 모든 예언을 모세의 종말론에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의 메시아 예언에서 특히 눈에 띄는 한 단어가 있는데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모스는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초막”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그 이유는 책 전체의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5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소포타미아의 천체 신인 “시쿠트”를 숭배하며, 하나님 대신 그 신을 하늘의 왕


풍요의 땅에서의 굶주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인터넷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성경에 즉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 시대에는 토라 사본이 성전(왕하 22:8)이나 여호와의 예언자들(단 9:10)에 의해 보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꿈(창 37:5), 우림과 둠밈(출 28:30; 레 8:8; 민 27:21; 신 33:8), 그리고 예언자들에게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또는 국가적 배교의 시기(위의 구절들처럼)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든 소통을 차단하시고 침묵하셨습니다(삼상 28:6 참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하


예레미야서의 위로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렘 30:1-3). 예레미야 30-33장은 "예레미야서의 위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확실히 "새 언약"에 대한 약속입니다(렘 31:31-34).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은 예레미야의 종말론이 토라, 특히 신명기 30장에서 어느 정도 인용되었는가입니다. 유배 후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하겠다는 약속(렘 30:3)은 신명기 30:3의 말씀과 명백히 일치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미 5:5-6) 저의 묵상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저처럼 유대인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찾아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종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여정을 시작하기에 가장 유대적인 곳은 후대의 랍비 문헌이 아니라 모세의 토라와 예언서들이었습니다. 히브리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예수님, 곧 우리와는 상관없는 분이라고 들었던 그분과 분명히 닮은 고대 구절들을 발견했습니다. 예언과 그 성취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사


깨진 약속에서 하나님의 깨지지 않는 언약으로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렘 3


하나님께서 마른 나무를 번성하게 하실 때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겔 17:22-24) 에스겔 17장은 다윗 왕조의 마지막 비극적인 날들과 그 뒤를 이은 바빌론 유배를 예언합니다(겔 17:11-21 참조). 모든 민족이 부러워했던 영광스러운 왕국에서 다윗의 성과 왕권과 영광은 폐허로 전락했고, 미래 왕국에 대한 모든 희망은 사라진 듯했습니다(시 89편 참조).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기 때문


아모스서에서 사도행전까지: 새 마음을 향한 부르심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5:25-27) 혹시 셔츠에서 튀어나온 실밥을 잡아당겨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깊숙이 실이 얽혀 있어서 당황했던 적도 있으시죠? 한번 잡아당기다 보면 어느새 작은 실밥 하나가 아니라 소매 전체가 통째로 뽑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암 5:25)라는 구절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민수기 14:33과 32:13, 두 구절이 연결됨을 깨닫게 됩니다 (민 32:13은 민 14:33을 인용한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은 모세오경의 줄거리에서 중요한 본문문인데, 이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이 부족하여 약


심판 가운데 은혜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7-20). 하나님의 영광이 첫 번째 성전에서 떠나고 있을 때에도(겔 10:4, 18; 11:23),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심판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예언적 메시지를 받습니다. 에스겔의 예언, 곧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되고 하나님께 순종할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신명기 30장(1-6절 참조)에서 직접 인용한 것입니다. 심판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집으로 인도하는 광야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6-8) 번영 복음은 언제나 아주 인기 있는 메시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 충분히 가지고 설교자에게 돈만 충분히 주면 행복하고 건강하고 부유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해 가지신 뜻은 언제나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우


평화를 가져오는 정의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북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말과 병거와 기병과 큰 군대를 거느리고 두로에 임하게 하리니… 내가 네 노래 소리를 그치게 하며 네 수금 소리를 다시는 들리지 않게 하리니… 내가 네게 공포를 가져와서 네가 다시는 있지 아니할 것이요 비록 네가 찾더라도 다시는 발견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6:7, 13, 21). 종교적, 도덕적 다원주의라는 상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의 진리가 상호 배타적이지만 어떻게든 동등하게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구절들은 많은 신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원독자들에게는 열국에 대한 예언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놀라운 소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한 열국에 대한 심판의 약속은 언젠가 마침내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깊은 안도감과 위안을 주었습
![[오늘의 묵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webp)
![[오늘의 묵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jpg/v1/fill/w_316,h_237,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webp)
[오늘의 묵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암 7:10-13) 이 짧은 이야기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것과 믿는 것을 거부하는 또 다른 예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왜 그럴까요? 선지자들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 우리 내면의 변호사들이 우리에게 팔아넘긴 자기 정당화의 변명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에게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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