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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이스라엘 블로그&아티클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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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은 초막절인 수콧에 근거했을까요?
11월 넷째 목요일에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을 기념합니다. 이 축제의 유래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성경의 초막절인 수콧 축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존 F.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3세기전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의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황야에서 감사의 시간을 따로 가졌습니다. 정해진 날에 그들은 안전과 자녀의 건강, 밭의 비옥함과 그들을 하나로 묶은 사랑,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과 연합시킨 믿음에 대해 경건하게 감사했습니다." 수콧과의 연관성 미국에 도착하기 전, 기독교 순례자들은 청교도 신앙으로 인한 영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 1607년 네덜란드에 잠시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또 다른 박해받는 집단인 스페인에서 추방된 스파라디(스페인계) 유대인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미국인이 알다시피 1492년에 콜럼버스는 푸른 바다를 항해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유대인이 알다시피 1492년은 그들이 스페인에서 추방된 해이기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여러분의 친절이 이룬 성과
원포이스라엘(ONE FOR ISRAEL)은 이 어두운 시기에 보내주신 여러분의 기도와 지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아낌없는 관심과 기도가 이루어낸 성과를 나누고자 합니다. 전쟁과 죽음, 증오로 얼룩진 2년의 세월이었지만, 여러분 같은 분들의 따뜻한 손길은 많은 도움과 치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피난민 가족들이 도움을 받아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오랜 임무 수행 중에 격려와 필요한 장비를 제공받았습니다. 노인들은 위문품 패키지를 받았습니다. 진실이 왜곡된 세상에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의 후원 덕분에 예수님의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가 이 지역 전역의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것은 진실과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절박한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함 전쟁 중 많은 분들이 저희의 구호 활동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집을


한 양 떼, 한 목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에게서 요구하여 양 떼를 먹이지 못하게 하리니 목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 것이요 내가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리라 …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치고 모든 약한 자를 뿔로 쳐서 흩어지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건져내리니 그들이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고 양 떼와 양 떼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리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가운데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 34:10, 21-24). 거짓 목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양 떼에 대한 사랑과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의 양 떼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그분은 악한 목자들을 교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의 양들을 대체하려


눈가리개가 서서히 벗겨지는 느낌이 듭니다
나의 이야기: 저는 세속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메시아닉 동거인과 함께 성경을 읽고 개인적인 경험을 한 후, 마치 눈가리개가 천천히 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렬하고 질문으로 가득하지만, 실제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알아두어야 할 사항! - 수년간 저희 사역은 성장했고 이스라엘에서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영상을 통해 저희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저희 신앙을 나눌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질문이 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알게 된 축복입니다. - 현재 히브리어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79만 2천 명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희 히브리어 영상을 몰아보거나, 여러 영상 을 반복해서 시청합니다. - 유대인들은 신앙의 여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극복해야 할 많은 문화적 장벽이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의 질투하시는 사랑
“바벨론 사람이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음행으로 그를 더럽히매 그가 더럽힘을 입은 후에 그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느니라… 내가 너를 향하여 질투하리니 그들이 분내어 네 코와 귀를 깎아 버리고 남은 자를 칼로 엎드러뜨리며 네 자녀를 빼앗고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겔 23:17, 25). 에스겔 23장은 이스라엘이 이방 신들을 “사랑”(겔 23:5, 9, 22)한 것을 “간음”으로 묘사합니다. 이 단어는 이 장에 21번(그리고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단 26번) 등장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부부 관계로 묘사되기 때문에, 다른 연인들을 향한 그녀의 욕망은 하나님의 “질투”(겔 23:17)를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자극했습니다. 모세오경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백성의 영적인 성실에 있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힙니다(출 20:5; 신 4:24; 5:9; 6:15). 우리는 일반적으로 질투를 부정적인 특성으로 생각하지만, 신학


평범함을 넘어선 삶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 33:10-11). 워치만 니는 그의 고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바울이 로마서 5~8장에 제시한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의 평범한 삶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미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상"이라는 단어가 올바른 단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켜보는 세상에게 신앙인의 삶은 정상이 아니라 인간의 설명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


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쩌면 저처럼 여러분도 가인이 정직한 실수를 저질렀고, 하나님께 꾸지람을 듣고, 약간 미쳐버린 후 질투심으로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이야기 속 가인에게 종종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아마도 우리가 그의 경험에 공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지만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인 죄로 마땅한 벌을 받았지만, 그가 홀로 세상을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가인의 대화 내용을 직접 살펴보면, 상황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비열하신가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종종 비열한 분으로 묘사되며, 온유하고 온화한 예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으로 묘사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야만적이고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원시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하나님을 좋아하며, 그분이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그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메시아 예수님으로 오셨을 때 어떤 급진적인 성격적 변화를 겪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왜 잘못된 생각인지 설명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히브리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 성경, 또는"구약”이 당혹스러운 모음집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너무나 자주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혹평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좀 비열해 보입니다. 솔찍히 말해서, 21세기 독자 대부분은 성경을 그리 읽지 않아도 곧 큰


히브리서 4장 12절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 3:1-3, 10-11). 미국의 세속적인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저는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것도 읽기를 싫어했고, 손에 공이나 낚싯대를 드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첫째, 우리 유대인 편에 속한 성경에서 기독교 구세주를 발


예레미야, 요셉 그리고 거부당한 메시야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렘 38:6). 예레미야가 메시아적 인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1장에서 예레미야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묘사됩니다(렘 1:5-9과 출 4:10-12, 신 18:18 비교). 11장에서 그는 이사야 53장에서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됩니다(렘 11:19과 사 53:7-8 비교). 그리고 38장에서 예레미야는 두 번째 요셉으로 묘사됩니다. 요셉처럼,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원치 않는 자로 끌려가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렘 38:6과 창 37:22, 24 비교). 놀랍게도, 모세와 여호와의 종과 요셉이라는 이 모든 비유는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그들처럼 되는 것은 멸시받고, 미움받고, 배척당하는 것


노아와 다니엘과 욥 그리고 더 위대하신 분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4:13-14). 에스겔 14장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죄악된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인내심을 완전히 소진시켰습니다. 그 도시의 시간은 다 되었고, 그 어떤 것도,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노아, 다니엘, 욥조차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누구도 살려달라고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겔 14:14, 20).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계산해야 할 날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 날은 이미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보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이스라엘에 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심지어 세상을 떠나면서도(아마도 '홍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주류 언론에 추모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다시 한번 널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삶과 그가 살아 숨 쉬며 전한 메시지에 대해 듣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표현한 것이며, 그분의 용서를 받고 그분과 함께 영원을 보내라는 초대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은 바로 지금 빌리 그레이엄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방문 이 거침없는 복음 전도자는 이스라엘에서 열린 대규모 공개 행사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1960년대에는 훨씬 더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침례교회 협회 개발 담당자인 바데르 만수르는 1960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만수르는 그레이엄 목사가 그를 위한 특별 오찬을 마련했던 골다 메이어 외무장관의 환영을


보는 눈과 듣는 귀
“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 하는 너희의 이 속담이 어찌 됨이냐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이 속담을 사용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가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멀리 있는 때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하느니라 (겔 12:1-2, 21-23, 26-27). 하나님이 사람들의 눈앞에서 역사하시는데도 그들이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한다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에서 “주께 드리네”로
많은 신자들은 은혜의 교리를 꺼려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겔 16장은 비유로 묘사된 하나님의 값 없이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버림받은 여자아이에게 사랑을 부어주시고, 그녀를 살리시어 자신과의 언약 관계로 이끄십니다. 은혜는 결코 위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 모두는 필멸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은 은혜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왜곡된 반응입니다. 에스겔 16장에서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분명한 "값싼 은혜"의 모습 중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여 다른 "연인들"(이방 신들)을 따르고, 마치 그분의 언약이 그들을 모든 경건한 경계선에서 해방된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음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에게 경고하며 예언하여 … 또 너희 수건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지고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물이 되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 너희가 다시는 허탄한 묵시를 보지 못하고 점복도 못할지라 내가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겔 13:1-2, 17, 21, 23). 체코 프라하 여행 중에 저는 14세기 사제 얀 후스의 성경 설교를 듣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던 베들레헴 교회 앞에 섰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요? 바로 그의 설교를 실제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라틴어가 아닌,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언어로 설교했습니다. 평범한


예수님은 나의 안식처이자 생명의 길입니다
제 나이는 50입니다. 저는 인생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아 헤매며 오랜 배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알아두어야 할 점! - 놀랍게 들릴지 모르지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분이 누구셨는지(누구신지!)도 잘 모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 이스라엘에서는 신약성경을 쉽게 구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신약성경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와 뉴에이지 신비주의에 관한 책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신약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만든 인기 좋은 신약성경 앱 덕분에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약성경을 직접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온라인 전도 영상과 자료들은 다른 방법으로 진리를 접하기 어려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줄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찾고


선지자는 여전히 책을 통하여 말합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는 붙잡혔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렘 36:4-6, 8). 저는 우리 모두가 이스라엘의 고대 선지자 중 한 명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선지자의 "실시간 콘서트"에 가는 것이 녹음을 듣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선지자의 기록된 말씀은 선


그 아름다움을 보도록 눈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몇 년 동안 여러분의 모든 동영상을 꾸준히 봐왔고, 얼마 전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제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저를 만드신 분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알아두어야 할 사항 - 온라인 전도 영상과 자료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진리를 접하기 어려웠던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브리어 영상을 멈추지 않고 시청합니다. 한 영상에서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거나 반복해서 시청합니다. 지금까지 5,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 최근 신약 성경을 요청하신 분들께 200권 이상을 보내드렸으며, 5명 중 1명은 질문을 하고 신앙을 탐구하기 위해 계속 연락하기를 원했습니다. 기도하기 -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주님께로 이끄시도


가자 터널의 인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많은 인질들이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가자 테러 터널을 나온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이야기들이 서서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질들은 집으로 돌아와 끔찍한 시련에서 회복하기 위한 긴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회복력과 감동적인 믿음의 이야기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두 인질, 아비아달 다비드와 가이 길보아-달랄은 마침내 라빈 메디컬 센터에서 퇴원했습니다. 그들은 그 끔찍한 장의 끝을 상징하기 위해 병원을 나서면서 불을 껐습니다. 그들이 견뎌야 했던 공포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그들을 위해 중보하면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가자 지구 터널에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어 위로와 격려를 주시기를 간구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진심으로 들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터널 깊숙이 갇힌 인질
![[오늘의 묵상] 바벨론 떠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50cfadf065b049ce98d10582bd11076b~mv2.jp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50cfadf065b049ce98d10582bd11076b~mv2.webp)
![[오늘의 묵상] 바벨론 떠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50cfadf065b049ce98d10582bd11076b~mv2.jpg/v1/fill/w_317,h_31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50cfadf065b049ce98d10582bd11076b~mv2.webp)
[오늘의 묵상] 바벨론 떠나기
“내가 벨을 바벨론에서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끌어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몰려가지 아니하겠고 바벨론 성벽은 무너졌도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렘 51:44-45). 예레미야 50-51장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주제를 다룹니다. 성경은 우리 손으로 복수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롬 12:19), 여호와의 복수는 언제나 공의로우며, 따라서 달콤합니다(렘 50:15, 28; 51:6, 11, 36). 우리는 원수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되지만(마 5:44), 하나님의 공의롭고 정의로운 보복을 기대하는 것은 그분의 백성에게 깊은 위로와 안도감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입니다(렘 51:59-6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불의를 그분의 시간과 그분의 방식으로 친히 다루실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이 마지


이스라엘 최고의 의사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렘 8:21-22) 지난 며칠 동안 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상징적인 병원 중 하나인 하다사 엔 케렘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샤갈의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유대 산지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전승에 따르면 세례 요한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저는 문간에 예레미야 8장 22절의 구절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으리라." 그 구절을 보면서 예레미야 8장 22절이 예레미야서의 핵심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그 새 언약만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


메시아 안에서 연합
“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을 날이 이르리니,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라.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각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의 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렘 31:31-34) 오늘날 유대인들에 대한 복음주의적 사랑은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습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생각에 뿌리를 둔 반유대


안식일을 왜 지켜야 할까요? 찰리 커크가 설명합니다…
안식일 준수가 기독교계에서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찰리 커크가 쓴 책 "하나님의 이름으로 멈추십시오: 안식일을 존중하는 것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이유"라는 책 덕분이기도 합니다. 찰리 커크는 암살당하기 직전에 이 책을 완성했고, 이후 출간되어 안식일 준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안식일(히브리어로 샤밧)을 지키는 것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상당한 건강상의 이로움을 제공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연구 결과: 우리 모두 안식일 휴식이 필요합니다. 바이오메드 센트럴(BMC)은 "유대교의 종교적 생활 방식, 특히 안식일 준수가 노년기의 습관적인 수면-각성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구진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전반적인 정신 건강 개선, 수면 개선, 주중 피로 감소에 기여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더 위대한 출애굽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 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렘 16:14-15). 바울이 신명기 30장 11-14절을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롬 10:6-8 참조)이라고 언급한 것이 많은 평신도와 신약 학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바울이 예수님과 새 언약을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명기 30장은 시내산 언약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나요?(신 30:8, 11 참조) 사실 신명기 30장은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비전을 위한 장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6장 14-15절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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