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 원포이스라엘
- 7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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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6일 전

분명 우리가 순종하기 가장 어려운 명령 중 하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영국 트위터에서 “모든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라는 문구가 유행하고 있는 이때,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성경의 권고는 그 어느 때보다 극단적으로 보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하마스(그리고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들)를 용서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입니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추가 단계를 취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자지구에는 모든 것을 잃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적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저는 요나서를 읽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그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닉 신자 모임의 한 이스라엘 남성이 소셜 미디어에 쓴 글입니다. 그는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도전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공감할 수 있었고…그것을 생각하면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도전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회개하라는 외침을 듣기를 원하나요? 그들에게도 믿음의 가족에 포함될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할까요? 그것은 단지 두려움이 아니라 그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혐오이며, 그런 사람들이 회개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은 투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하마스는 ISIS와 거의 동일하며, 요나 시대의 니느웨도 같은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했었습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극단적이고 엄청한 잔인함입니다. 심지어 아기들에게도 자비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것들을 보고도… 가해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3-48).
기준이 너무 높아서 전혀 도달할 수 없습니다. 완전함이요?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날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비행기를 타지 않는 한……우리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가능성의 온 우주를 열어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집니다. 그분은 우리가 날 수 있게 해 주는 비행기이십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기꺼이 우리의 모든 감정, 생각, 갈등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져다 놓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드실 공간을 허락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초자연적인 사랑으로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불가능의 하나님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코리 텐 붐은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고 나중에 경비병 중 한 명을 만났습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맞은편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 외투와 갈색 모자를 보았고, 다음 순간에는 파란색 유니폼과 해골과 두 개의 뼈가 교차하는 이미지가 있는 차양 모자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급히 머리 위의 강렬한 조명이 있는 커다란 방, 바닥 중앙에 애처로이 쌓인 옷들과 신발 더미, 이 남자를 지나 나체로 걷던 수치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눈 앞에 양피지 가죽 같은 피부 밑으로 날카로운 갈비뼈가 보이는 내 여동생의 연약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베시는 얼마나 말랐었는지!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베시와 나는 우리 집에 유대인을 숨겨준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를 수용했던 라벤스브뤼크 강제 수용소의 경비병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내 앞에서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좋은 메시지네요, 아가씨! 당신 말씀대로 우리의 모든 죄가 바다 밑바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그토록 입심좋게 용서를 말하던 나는 그 손을 잡기는커녕 지갑을 더듬었습니다. 물론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수천 명의 여성 가운데 어떻게 한 명의 죄수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그를 기억했고 그의 벨트에서 흔들렸던 가죽 끝 부분분을 기억했습니다. 석방된 이후 처음으로 나의 간수 중 한 명을 대면했는데 나는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강연에서 라벤스브뤼크을 언급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거기 경비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곳에서 했던 잔인한 일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입술에서도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아가씨” – 다시 손이 나왔습니다 –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나는 거기 서 있었습니다. 나는 거듭거듭 죄를 용서받았지만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내 여동생 베시는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단지 그 요청만으로 서서히 끔찍하게 죽어간 그녀를 지울 수 있을까요? 그가 손을 내밀고 거기 서 있던 것은 몇 초도 안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해야 했던 일 중 가장 어려운 것과 씨름하고 있는 것은 나에게는 몇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용서는 의지의 행위이며, 의지는 마음의 온도와 관계없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나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나는 내 손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느낌일지 아시겠지요. 그래서 나는 딱딱한 나무처럼, 기계적으로 나에게 뻗은 손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했을 때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율이 내 어깨에서 시작되어 내 팔을 타고 흘러내려 우리가 맞잡은 손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이 치유의 따뜻함이 내 온 존재를 가득 채우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용서합니다, 형제님! 내 온 마음으로.” 나는 울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전직 간수와 전직 죄수로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그때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그토록 강렬하게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불가능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코리 텐 붐이 그 간수를 사랑하도록 도우신 것처럼 그분은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코리 텐 붐이 스스로 말했듯이,
기도의 위대한 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을 떠나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는 불가능을 전문으로 합니다.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다른 쪽 뺨도 돌려보시겠어요?
예수님은 또한 마태복음 같은 장에서 우리에게 다른 쪽 뺨도 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악에 저항하는 매우 강력한 방법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큰 효과를 본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다른 쪽 뺨도 하마스에게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국가가 교전을 거부한 체 폭력의 악순환을 끝내기를 희망하며 대응하는 것이 신적인 방법일까요? 기독교인에 의해 운영되는 경찰서에 대한 영국 코미디 촌극이 있습니다. 한 여성이 핸드백을 빼았기고 당황한 채 뛰어 들어옵니다. 경찰은 “아 예, 우리는 그를 용서하고 놓아주었어요”라고 그녀에게 확신시켰습니다.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코미디입니다. 가장 진실한 예수님의 제자라도 그런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사법 제도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쪽 뺨을 돌리는 것은 국가 사법 제도나 국제적 규모의 테러리즘과의 싸움이 아닌 대인관계를 위한 것입니다. 원포이스라엘 성서 대학의 교수 중 한 명인 안드레아스 스투츠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과 관련하여 그러한 구절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썼습니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의 적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제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적 차원에서 신약성경의 윤리를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민사/사법적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판사나 경찰이 강간 피해자에게 강간범을 용서하고 그가 사법적 처벌을 받지 않도록 요구하기를 원하시나요?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범죄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군대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이스라엘의 적들 사이에서 억지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신약의 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을 때 그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심각한 불의가 행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을 막기 위해 (심지어 잔인한) 힘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또한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쟁 중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이스라엘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군대가 "이스라엘 방위군"으로 명명되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방정식에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힘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상대방은 이스라엘의 선의에 감동하지 않고, 이를 약점으로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 경험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경우 군사적 조치를 사용하여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허용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무입니다. 히틀러와의 싸움에서 보았듯이 때로는 끝까지 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도덕적인 일입니다. 무자비한 공격에 직면하여 군사적 대응을 억제하는 것은 폭력의 순환이 지속되는 방식입니다. 일단 승리하면 폭력을 멈출 수 있지만, 타협을 하면 가해자가 공격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유혈사태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는 별개로) 하마스와 같은 적은 ISIS와 나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막아야 합니다. 강제로 인간 방패로 이용당하고 지도자들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하는 삶을 살았던 가자지구의 일반인들도 이 시점에서 하마스의 제거를 외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가자지구에 있는 누군가의 말입니다:
“지금 모든 가자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꿈꿉니다. 우리는 하마스의 어리석은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일까요? 만약 하마스가 남아 있다면, 예를 들어 휴전이 이루어진다면, 1~2년 안에 하마스는 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할 것입니다.”
하마스를 제거하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히죽거리며 행하는 악행과 피해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가자 주민들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 할 올바른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쪽 뺨도 대지 않는다면 가자지구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스라엘 구급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은 가장 극심하고 참혹한 환경 속에서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체포된 테러리스트 부상자들 중 일부가 현재 우리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가자지구에서 붙들린 이스라엘 군인 부상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은 하마스 지도자 중 한 사람의 딸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해 가자에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이스라엘은 20,000명의 가자 사람들에게 취업 허가를 줬고, 매일 여러 트럭 분량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전달했습니다. 관계와 평화 구축을 추구하는 많은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평화 운동가 중 일부는 하마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반복해서 말했듯이 가자지구 사람들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하마스는 적이 맞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자지구 사람들, 심지어 하마스 사람들까지 누구든지 그들을 축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나누며 가자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응답한 사람들을 매일 최대한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분쟁에 대해 기도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거의 항상 가자지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적들!
한편, 우리는 이란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조력자들로부터도 큰 사랑과 보살핌,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테헤란의 이란 축구 팬들은 당국이 주최한 경기에서 팔레스타인 국기 제거를 요구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마스와의 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우리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란 국민은 그들의 지도자들에 반대하고 이스라엘 국민을 지지합니다.
최근 한 이란 친구가 우리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해왔습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격려하고 기도하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란 출신의 또 다른 무슬림 배경 신자는 이곳 이스라엘의 아비라고 불리는 메시아닉 유대인 신자와 팀을 이루어 수천 명의 난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인 사람들이 북쪽 국경에 근접한 집과 가자 인근 지역사회에서 대피해 나왔습니다. 노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간병인들이 나라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대규모 행사에서 구호 요리사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나섰고, 그들은 큰 사랑과 보살핌으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지만, 우리가 운영하는 아가페 라디오는 미국 사람들 다음으로 많은 이집트 출신이 접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메시아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랍인과 유대인, 이삭의 아들과 이스마엘의 아들 사이에 관계를 연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신자들 사이에 있어 왔습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끼리의 교제는 비록 적국이라 할지라도 비교적 쉽습니다. “너희가 형제들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끔찍한 전쟁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ISIS가 날뛰고 이슬람의 민낯이 드러나는 동안 이라크와 시리아의 많은 무슬림들이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살고 싶은 일반 시민과 테러의 길을 선택하는 급진적인 무장세력 모두를 포함하여 가자지구의 모든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마음을 드러내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의 원수였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8-10)
하나님은 원수인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 죄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형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대신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그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어둠 속을 행하는 이들의 운명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포함한 그 누구도 회개에 따른 용서 없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적국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믿음의 가족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열려 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집으로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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