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덴햄의 게스트 블로그
역사는 특정한 개인들이 같은 방에 있을 때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테오도르 헤르젤이 유대 국가를 재건하려는 계획을 기꺼이 도와줄 윌리엄 헤츨러라는 영향력 있는 기독교인을 만났을 때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헤르젤은 그들의 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헤츨러는 내가 모든 점에서 이성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운동은 '성경적' 운동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는 내 소책자을 몇몇 독일 왕자들의 손에 전달하길 원합니다. 그는 바덴 대공의 가정교사였으며 독일 황제를 잘 알고 있었고 나에게 지지자를 연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그 나머지 이야기는 역사입니다. 비슷하게, 1776년 토마스 제퍼슨, 존 애덤스, 벤 프랭클린이 한 방에 함께 있었을 때, 그들은 수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칠 독립선언서라고 불리는 걸작의 최종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가렛 대처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인적인 만남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촉매제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적인 대화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만남도 랍비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함께 "같은 방"에 있었던 1세기 저녁에 있었던 대화의 영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만남과 그들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역사에서 기록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대화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토론은 그 사적인 저녁 만남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수십억의 삶을 변화시킨 계시와 진리를 모두 드러냈습니다.
이 놀라운 대화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랍비장이자 이스라엘 산헤드린의 일원인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서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육체적 출생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지옥에 보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다가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 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반응은 니고데모에게 그의 교리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면서 도전했을 뿐만 아니라 니고데모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거듭나다" 또는 "위에서 태어난다"는 개념이 니고데모에게 생소해서가 아니라(오늘날에도 거듭난다는 아이디어는 정통 종교인으로 돌아가는 유대인을 의미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 문화에서 유대인은 네 가지 방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성인식에서, 결혼에서, 랍비가 되는 것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수석 랍비가 되는 것에서 였습니다. 그 나이에 니고데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5-6)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방식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이신지, “인자”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이것은 그들 사이의 대화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요한 3:13). 인자라는 용어는 니고데모가 아마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다니엘서의 중요한 예언적 언급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서 7:13-14은 말합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니고데모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위대한 랍비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시도록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 즉 만왕의 왕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니고데모의 이러한 깨달음은 당시 니고데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유대인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유대인이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대답은 물론입니다! 성경은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대해 글을 쓸 때 이렇게 말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하지만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기록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나님이시기를 그치고 제우스의 고대 신화적 화신 중 하나처럼 인간의 형태로 땅에 내려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그의 형태와 본질 그대로 본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은 복합적인 통일체이십니다. 그는 천국에 좌정하셔서 우주를 그의 임재와 무한하고 무궁무진한 것으로 채우십니다. 동시에 인간의 몸의 장막에서 우리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진영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뱀의 공격에 대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모세에게 지시하신 민수기의 이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대 위에 놋뱀을 높이 들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독사에게 물린 상처에서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21:9)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다른 종류의 "뱀에 물린"–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망과 심판으로 이어지게 하는 "죄악의 치명적인 물림"으로부터 치유를 위해 십자가에 "올려지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 이야기의 맥락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단 16 개의 단어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그리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9-21)
우리는 망가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죄는 DNA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완벽한 유전자, 염색체, 부모, 사회, 심지어 완벽한 교회도 없습니다! 유전학은 사람의 성향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릇된 선택이나 죄를 해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함께 보낸 시간의 놀라운 결과는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그분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새로 판 무덤에 매장하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니고데모는 탈무드에도 세 번 언급됩니다. 탈무드는 그가 우물을 파는 사업을 소유한 부유한 사람으로 파악합니다. 탈무드는 또한 니고데모가 두 가지 기적을 행했다고 말하면서 그가 말년에 극심한 역경과 시련을 겪었다고 기록합니다.
랍비 학교의 교장이자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부르셨던 랍비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변화로 인해 그는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가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구현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1-2; 5 에서 이 신실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은 메시아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신자들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유대인이 4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들은 오늘날 소수이지만 언젠가는 “…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때!”(롬 11:26) 그들은 다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우리 세대는 예수님을 알리고 바울이 로마서 1:16-17에서 확인한 "신성한 대본"에 충실하기 위해 그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이것을 현재 시제로 썼습니다. 즉, 복음이 여전히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고 여전히 "모든 믿는 자"를 위한 것이라면 복음은 여전히 "먼저 유대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라는 용어는 단순히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를 말합니다.
단순한 대화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십시오. 오늘 당신은 누구와 이야기하실 건가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