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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들

루터는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유명하고, 또한 덜 알려져 있지만 히틀러에게 영감을 주게 된 신랄한 반유대주의 문서를 저술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믿음의 투사였을까요? 아니면 사악한 반유대주의자였을까요?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크에 있는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습니다. 교회의 교리가 매우 삐뚤어지게 된 것을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의 "95개 논제"에는 두 가지 중심적인 믿음, 즉 성경이 신앙의 주된 권위가 되어야 하며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두 가지 핵심 신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본질상 돈을 받고 죄사함을 파는 “면죄부”의 사악한 관행을 비난했습니다. 그는 또한 당시 가톨릭 교회에 만연한 탐욕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의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은 왜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루터. 지금까지는, 좋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연구하도록 영감을 주다

1517년의 종교 개혁은 매우 긍정적인 방식으로 전 세계적인 그리스도의 몸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일어난 축복들 중 하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인쇄기의 발명과 성경 번역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된 그들 자신들의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 땅에 다시 모일 것이라는 많은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특히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종말론적인 관심과 성경의 예언에 대한 연구에 대한 큰 각성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많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받아들였으며 이스라엘과 해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된) 회복 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게 만든 루터의 급진적인 행동이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발전하거나 관심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교회 전통과 교리에 대한 노예적인 집착을 거부하는 것이 사실상 위험한 것이 아니며 기꺼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선하고 옳은 일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 루터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존경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루터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가 교회가 진리를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1523년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책을 저술하여 기독교인들이 유대인 형제들에게 더 친절한 태도를 갖도록 격려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인간이라기 보다는 개처럼 대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재산을 탈취하는 것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성경을 잘 가르친다면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들의 조상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의 믿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유대교가 완전히 거부되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고 오만과 경멸만 당한다면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 이방인인 우리가 유대인을 대하듯이 사도들이 우리 이방인을 대했다면, 이방인 중에 그리스도인이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이방인들을 그렇게 형제처럼 대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유대인을 형제처럼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들 중에서 얼마를 개종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도착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멀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1523

이 시점에서 루터는 유대 민족에 대한 큰 존경심을 나타내고 동료 기독교인들도 이를 따르도록 권장합니다. 그는 성경에서 유대 민족에게 주어진 영예의 자리를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지위를 자랑하려는 경향이 있을 때, 우리는 이방인에 불과하고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혈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인이자 양자입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의 혈족, 사촌,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혈과 육을 자랑한다면, 로마서 9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유대인들은 실제로 우리보다 그리스도에 더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행위로 이것을 나타내셨는데 이방인들 중에 유대인에게만큼 높은 존귀를 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이방인들 가운데는 조상도, 사도도, 선지자도 세움을 받지 못하였고 정말로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서 3장 2절에서 성경 즉 율법과 선지자를 유대인 외에는 아무 민족에게도 위임하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편 147편 19-20절에서는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성경을 통하여 지도하도록 요청하고 조언합니다. 그러면 그들 중 일부가 따라 올지도 모릅니다. 이 대신에 우리는 그들이 잘못한 것이 없어 보이면 그리스도인의 피로 제사를 한다고 정죄하고 비방하며 그들을 강제로 몰아세우려고만 합니다. 나는 다른 어리석은 일은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는 한, 우리가 어떻게 그들 가운데에서 선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기독교인들이 유대 민족을 그들의 "큰 형"으로 존중하는 교회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일 자신이 유대인이었다면 교회가 유대인을 대하는 방식을 보았을 때 차라리 기독교인이 되기 보다 돼지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으로 괜찮지요?


부패에 대한 증오자에서 부패한 증오자로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고 유대 민족의 영적 맹목성이 단순히 교회의 학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루터에게 분명해지자 그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루터는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사람이었고 쉽게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말년에 그의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좌절감에 빠진 루터는 1543년에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를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독일 지도자들에게 유대교 회당을 부수고 그들의 책을 불사르고 집을 파괴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관습과 가르침을 금지하기를 원했고 유대인을 "악마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정말 절망적이고, 사악하고, 독을 품은, 악마 같은 이들은 1400년 동안 우리의 고통과 불행이었고, 지금도 여전한 유대인들의 존재입니다… 기독교인 여러분, 악마 다음으로 진정 유대인보다 더 잔인하고, 더 독하고, 강포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마틴 루터,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 1543

이 경멸적인 책은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했을 정도로 눈에 띄게 반유대주의적입니다. 많은 루터교도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그의 후기 작품에 대한 맹렬한 증오보다 그의 초기 책의 접근 방식을 선택했으며 그의 라틴어 번역가조차도 그것을 수정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그것을 발견하고 루터를 천재로 여겼습니다.


나치의 악행과 유대 민족에 대한 짖밟음들, 회당을 불태우고 가옥을 파괴하는 것을 따라갈 때, 히틀러가 그 전에 루터가 독일 지도자들에게 한 조언을 따랐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히틀러는 루터의 말을 사용하여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루터를 유대인에 대한 독일 국민의 가장 위대한 경고자로 선언했습니다.


루터의 유산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인 야드 바셈(יד ושם)은 선동부터 학살 수용소까지 지옥으로 내려가는 과정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끔찍한 역사적 현실들을 통과하는 여정으로 만들었으며 현대 예루살렘의 탁 트인 전망으로 이끌어 냅니다. 슬프게도 루터는 홀로코스트의 부정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또한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읽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끝내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으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수많은 예언이 영향력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명해졌고, 그들의 도움 없이는 이스라엘이 재건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루터를 좋은 책들로 연관짓거나 아니면 쓰레기통에 던지려고 하는 대신, 우리는 심지어 신자들 가운데서 선과 악, 이 둘에 대한 인간의 능력을 냉정하게 주목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이 모든 것을 평가해야 할 분은 당신이나 저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루터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깊은 오점을 남겼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습니다. 루터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이 좋든 나쁘든 간에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이 어떻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영향력을 미치는 지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루터 자신이 그의 말이 교회와 이스라엘 백성과 세계에 미친 영향을 추적할 수 있다면 역사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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