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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원포이스라엘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왜 중요할까요?

1세기에 이방인들이 씨름하던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경이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무엇이며, 성경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요?


문제 1: "나는 가치 없는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이었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 문제는 위축된 가치 감각입니다. 슬프게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정체성에 불만을 가지며 자기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는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 민족이 어떻게든 "더 낫다"고 하며 이방인은 이등 시민이라는 거짓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방식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대답: 에베소서


말씀 한 구절이 그것을 멋지게 요약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이방인 정체성의 문제가 항상 당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면, 이 구절의 주변 문맥은 그 상황을 바로잡고 당신에게 훨씬 더 많은 격려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러분은 유대 민족과 함께 “한 새 사람”이 되었고, 같은 성령으로 같은 아버지께 똑같은 나아감을 부여받았으며(같은 메시아 덕분에) 동일한 시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당신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일부입니다.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성전 뜰에 있던 칸막이가 허물어졌습니다. 이방인은 어떤 식으로든 이등 계급이 아닙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 모두는 이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평등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 2: “나는 이스라엘을 대체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유대인입니다!”

이 두 번째 문제는 정반대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버림받았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풀려진 가치 감각, 마치 교회가 지금 중요한 모든 것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에는 이 문제에 관한 다음과 같은 큰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 로마서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 11:18)


이 구절 자체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문제를 그만두게 만들지만 이 주제에 관해 로마서에서 더 탐구할 것이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1장 16절의 “먼저는 유대인에게”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전체의 맥락에서 로마서 1장 1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에게 “먼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헬라어 원어에서 "먼저"라는 단어는 "양자"(πρῶτον)라는 단어입니다.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이 단어를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이 유대인에게 “먼저”라는 것을 이해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순차적 보기:

이 '양자'라는 단어는 먼저 순차적으로 - 복음이 먼저 유대 민족에게(역사적으로) 갔고, 그 후에 열방에 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1세기에 기회를 가졌으나 그것을 날려 버렸다고 잘못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나머지 부분은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2. 특수성 관점:

'양자'는 또한 특이함, 특별함, 또는 탁월함에서 첫째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유대인이 첫째가 되는 것에 대해 쓴 것이 이러한 의미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복음은 특별히 유대인 - 그리고 또한 이방인을 위한 것입니다. 왜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하고 순차적인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로마서의 나머지 부분을 읽을 때 그것이 바로 바울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음 장에서 그는 똑같은 구절을 사용합니다. 심판은 유대인에게 먼저 임하고 또한 이방인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롬 2:9-10).

그래서 복음은 유대인에게 먼저이며 또한 이방인에게 입니다. (1:16) 그리고 심판도 먼저 유대인에게 가고 또한 이방인에게 입니다 (2:9)

우리가 이 두 구절을 나란히 놓을 때, 우리는 바울이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많은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 메시지는 유대 민족에게 맡겨졌습니다. 바울이 그의 책 전체에서 설명했듯이 “하나님의 신탁”인 성경을 받은 것은 유대 민족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민족으로서의 그들의 역사 그 자체였고, 메시아가 온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오신 것은 유대 민족을 통해서였습니다.

사실상 로마서는 이방인들에게 상기시킵니다. “당신들이 인수받은 것이 아니니 유대인 형제자매를 향하여 오만하지 마십시오!” 메시아는 육신에 따르면 유대인이며 (1:3)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과 성전, 영광과 조상들,그리고 양자 됨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으며(3:2) 우리의 모든 구속적 축복은 유대인의 것입니다(3:1-2 ; 9:1-5, 11:28-29). 로마서 11장 24절은 바로 그 뿌리가 유대인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며, 그래서 복음은 특별히 (양자) 유대인을 위한 것이며 유대인들은 다시 접붙여져야 하는 자연적인 가지라고 말합니다(11:24). 이방인들은 비록 그 유대인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이제 접붙여질 수 있는 부자연스러운 가지입니다.

로마서 1장은 인간이 자연과 우리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보았으므로 모든 것은 변명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롬 1:18-20). 그러나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 계시가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설명하고 있어 더욱 책임감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특별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양자). 마찬가지로 우리는 바울이 복음이 유대 민족을 위한 특별히, 특히(양자)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기초 작업이 이미 완료되었고 – 트랙은 이미 그렇게 놓여져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복음은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또한 그리고 동등하게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러한 성경적 원리들은 지상사명을 수행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문맥적으로, 언약적으로, 복음이 특히 그리고 특별히 유대인의 것이었고 유대인의 것이고 미래에도 유대인의 것일 것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정말 유대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스라엘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대체신학”은 성경이 경고하는 유대 민족에 대한 교만 때문일 뿐만 아니라, 또한 로마서 1장 16절을 지상사명에 대한 이해에서 바로 적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죄악입니다. 복음은 전에 그랬던 것 처럼 오늘날도 유대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도전은 복음이 특히 유대인에게, 그리고 동등하게 이방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진리를 담대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은 이방인도 이스라엘과 함께 동등하게 포함되고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는 이방인 신자가 전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가족으로 따뜻하게 초대된 새 집으로 어떻게 환영을 받았는지 보여줍니다. 열방이 이스라엘 나라에 합류할 수 있도록 레드 카펫이 깔려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가 아니였던 집으로 입양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의 믿음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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