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두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선지자 시므온과 안나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메시야의 방문 시간을 알고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소중한 아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탁월한 본보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잠언 13장 12절에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고 말씀합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오랜 기다림이었습니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메시아는 창세기 3장 15절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그 힌트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희생을 통한 암시, 대비와 비유, 모형과 시적 표현, 에코와 유형이 매우 노골적인 예언과 함께 성경 전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실 구주를 수천 년 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기쁨의 덩어리인 아기를 안으며 시므온과 안나가 표현한 경외심과 경이로움은 잠언 13장 12절의 진리를 증거합니다. 얼마나 강렬한 기쁨의 경험입니까!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27-32)
시므온과 안나는 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미 5:2)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7:14). 그는 애굽에서 나올 것이며(호 11:1)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었습니다(사 11:1). 그는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기적과 기사를 행하실 것입니다(시 77:19, 잠 30:4). 그는 하나님의 아들(시 2:12, 잠 30:4)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사 9:6-7, 렘 23:5-6, 슥2:10)이 되실 것입니다. 그는 나병환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실 것이며 다리를 저는 자는 기뻐 뛰게 될 것입니다(사 35:5-6). 그는 제2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끊어질' 것이고(단 9:26), 그의 손과 발은 찔릴 것이며(시 22:17), 그는 처형되기 전에 조롱과 고문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다(사 53:4- 8). 이것은 신앙의 초보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분명 성경 예언에 정통했습니다.
그들 둘다는 이스라엘의 위로 곧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거듭거듭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가 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세주이신 메시아가 오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므온과 안나가 갓 태어난 예수를 만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대다수의 조건이 충족되기 전에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았고 그의 오심이 그들의 생애에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었고, 기적적인 마리아의 이야기 일부도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목자들의 소식과 천사들의 메시지가 그들에게도 들렸을까요? 단서들이 어떻게 쌓일 수 있었을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일을 하실지, 그가 어떻게 죽으실지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은 그분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약속의 아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세심한 기대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5)
누가는 성령이 시므온에게 임하셨고 또한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두 가지 사실은 연결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길을 걷는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셨습니다. 안나 역시 경건했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으며 시간, 섬김, 금식 등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는데서 주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네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6-38)
나는 예배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들었고 그것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면전으로 이끌고, 그분께 얼굴을 향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허공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찬양하며 그분께 집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듣습니다. 우리는 면밀하고 주의 깊게 경청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립니다. 시므온과 안나도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듣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진정으로 경청할 수 있습니다.
능동적인 듣기
누가에게서 들은 대로 우리는 시므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귀기울였음을 압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6)
이제 당신은 그에게 그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계시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시므온과 안나에게 계시를 주셨고 그들은 그것에 주의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시므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것을 상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복음서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으로 선포했다고 전합니다. 성령은 나중에 덧붙여진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영이시며(행 16:7, 빌 1:19, 롬 8:9), 예수님은 성령이 장차 올 것을 포함하여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요 16:13)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제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성령의 인도와 지시를 받는 것을 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며 성령과 동행했습니다.
본문은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전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전체에 걸쳐 성령이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시므온이 예수님을 안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과 더욱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 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애려 함이니라.” (눅 2:34-35)
분명, 성령은 그가 들은 것만 말씀하실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계시된 무너질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항상 일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정말 말씀하십니다. 간절히 듣고 마음을 다해 구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눅 2:33)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가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위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원수는 항상 우리를 의심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라고 말씀하셨어?" 그러나 시므온과 안나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과 나는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안나와 시므온처럼 될 것인가요? 우리 시대에 이루어질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십니까? 약속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촉구한 것처럼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고 그분의 얼굴을 찾는 일에 열정적입니까? 우리 모두는 때때로 반복적으로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자 투쟁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그분의 길을 살기를 원하도록, 우리의 내적 외적 변화위하여 특별히 그의 영을 보내셨습니다. 자신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모든 죄에서 돌이키고 다시 하나님을 향하며, 지금 다시 성령께서 임하셔서 새롭게 채워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시는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여러 번 권면하고 경고하셨습니다. 초신자였을 때 저는 간절히 순종하고 싶었지만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무엇에 주의할까요? 내가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요? 오늘날 저는 주의깊게 성경을 공부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무엇보다 제 시선이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야 함을 저는 압니다. 저는 그 분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한다"(딤후 4:7-8)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기대를 가지고 그분을 기다릴 때 그 앞에서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로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그분을 만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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