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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꿈: 철과 진흙의 발

그것은 정확히 다니엘의 꿈은 아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는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이 있는 동상의 환상이 있었고 그는 자기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합리적이지도 않았고 선하지도 않았던 느부갓네살은 갈대아의 술사들을 불러서 그 꿈을 해석할 뿐 아니라 그 꿈이 무엇인지도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단서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기원전 600년경에 일어났지만,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을 가진 이 동상 뒤에 있는 메시지는 지금 당장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유대 선지자 다니엘은 제국의 박사와 술사들 가운데 그 도전에 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다니엘이 식별해내고 이어 해석할 수 있었던 수수께끼의 징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단 2:31-33)


이제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대로 순금의 머리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화려한 바벨론 제국을 상징했습니다. 이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제시되는 다른 후속 제국이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철과 진흙이 혼합된 제국에 이릅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은 거대한 바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저는 특히 철과 진흙으로 된 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대표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쇠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 (다니엘 2:41-45)


어떤 제국이 대표되는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바벨론이 머리였다면 다른 제국은 메디아와 페르시아, 그리스와 로마와 같은 제국이 될 것입니다.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이 그렇게 많은 기반을 차지한 이슬람 식민주의일 수도 있을까요? 서구를 압도하는 숨막히는 인본주의와의 불안한 동맹일 수도 있을까요?

이슬람주의 중동과 극단적 인본주의의 서구

많은 사람들은 왜 진보 성향의 정치 그룹 사람들이 하마스에 대해 그토록 기괴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당황해 왔습니다. 어떻게 퀴어 커뮤니티가 사람들을 건물 밖으로 내던지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적 성향을 위해 사람들을 오토바이 뒤로 끌고 다니는 단체들을 그렇게 좋아할 수 있었을까요? 페미니스트들은 왜 강간범을 지지하는 것 같나요? 반파시스트라고 자처하는 발라클라바 모자를 쓴 학생들이 폭력적인 독재를 응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도하게 진보적인 그룹과 극도로 권위주의적인 그룹인 이 두 집단이 도대체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제, 인본주의적이고 깨어있는 이데올로기의 자유주의가 한 때 순진한 사람들이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규칙을 어기면, 처벌은 가혹하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관용의 가장 너그럽지 못한 패러디입니다.


극단적 인본주의 군중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저항하며 핵가족을 파괴할 결심을 굳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그들은 친절과 평등, 정의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마치 빛인 것처럼 행진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정반대입니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가정에 기초한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는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어둠과 빛을 분별하는 능력을 약화시켰습니다.  한때 사회주의에 매료되었으나 소련에서 시간을 보내며 신앙을 갖게 된 후 변화된 영국 언론인 말콤 머거리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경험적으로 가장 검증 가능한 현실인 동시에 지성적으로 반항하는 사실이다.”

반면에 급진 이슬람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여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일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주의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격차를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종종 히잡을 강제로 정숙하게 착용하고 심지어 여성이 일부 장소에서 허가 없이 외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여성혐오적 관행으로 표현됩니다. 도대체 이 둘은 어떻게 파트너가 된 걸까요?


철과 진흙의 불경건한 동맹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제외하고) 모든 것에 적용되는 이 세속적 인본주의의 편재성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서구에서 번성할 수 있는 비옥한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철과 진흙으로 이루어진 이 두 지배적인 제국은 실제로 섞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규범 준수를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거짓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신자라면 누구나 무함마드가 그의 “계시”를 받았을 때 직면했던 어둠의 세력을 쉽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거짓 선지자는 수십억 명의 귀중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달신 숭배를 거부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극단적 인본주의, 신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는 근본적으로 거짓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 선하심, 권위, 계획을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우리가 극단적 인본주의(wokeism) 썩은 뿌리를 식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만큼이나, 이슬람의 정신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도 훨씬 느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틱톡이 속기 쉬운 수많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오사마 빈 라덴이 단순히 오해를 받았다고 설득하고 있는 초현실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유명한 트랜스젠더 작가인 그레첸 펠커-마틴의 "미국에 보낸 편지"는 입소문이 났고, 그는  9/11 테러가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고 방어적'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혼란스러운 사고는 모든 인간 경험을 권력 역학의 터무니없는 과잉 단순화로 귀결시킵니다. 선과 악은 실제 도덕성에 대한 분별 없이 비뚤어진 피해의식으로 판단됩니다.


극단적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미덕을 주장하기 위해 포용적이고, 다양하며, 관용적으로 보이기를 원했고,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엘리트들에게서 매우 강력한 동맹을 발견했습니다.그들의 동맹은 아주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한 상호 이익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리고 그의 계획에 대항하는 움직임에서 더욱 악마적이 되도록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증오

서구 사회에서 선과 악을 인식하는 능력이 쇠퇴하고 이슬람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지면서 반유대주의가 분출되었습니다. 그것은 폭발을 기다리는 독성 혼합물이었고 10월 7일 그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군중은 학살에 대해 환호하고 기뻐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전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유대인들을 가스로 학살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1월의 반유대주의 연례 보고서는 10월 7일 학살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사건이 235% 급증한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디아스포라 사역(Diaspora Ministry), 세계 시온주의 기구(World Zionist Organization), 그리고 보고서를 발행한 유대 기구(Jewish Agency)에 따른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동가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미덕을 드러낸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약자를 옹호한다고 상상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를 처리할 어떤 방법도 없어 죄책감에 휩싸인 인간이 떠내려가는 빠른 강 흐름의 일부일 뿐입니다. 구원을 찾기를 바라며 자신들의 모든 가치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 유대인 대표위원회의 공보국장인 다니엘 슈가맨은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에게 그것은 석유나 기후 변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정의를 위한 십자군으로서  코스프레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대의 명분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팔레스타인' 시위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수월합니다.”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것은 자신의 의로움을 선언하고 자신의 미덕을 나타내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매우 심각한 문제를 식별할 수 있는 도덕적 나침반이 없으면 서구는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종의 혼합된 세력 동맹입니다. 한편, 이 자극적인 뒤썩임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밭은 희어져 익어 추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자유와 용서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구세주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속임수에서 벗어나 빛에 눈을 뜬 사람들은 무엇이 위태로운지 훨씬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용감한 제자들의 군대가 일어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상과 쇠와 진흙으로 된  발에 대한 다니엘의 꿈은 결국 온 땅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바위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단 2:34-35)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이 거대한 돌은 무엇입니까? 메시아입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듣는 것처럼, 메시야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하러 오십니다. 밀과 겨가 분리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연결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마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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