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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교회가 그것을 잘못 이해했을까요?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눅 24:25-26).

중세의 유명한 랍비인 라쉬(Rashi)는 신약성경의 구약 해석이 구약의 문자적 해석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라쉬는 교회가 구약에 대한 신약의 해석이 비록 역사적 저자들의 의도(즉, sensus plenior = 더 완전한 의미)를 나타내지 않더라도 어떻게 구약의 해석이 여전히 정확한지에 대한 대안적인 설명을 찾도록 교회를 격려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교회의 해석과 그들의 신앙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운명의 묘한 반전 속에서 교회는 라쉬의 해석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서의 단순한(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예수님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의미(즉, 구약에 대한 신약의 해석)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구약을 주의 깊게 읽는 것이 신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대한 신약의 해석만이 신약으로 이어진다는 라쉬의 말에 동의한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가 케이크를 어떻게 자르든 간에, 이것은 순환적 추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신약의 저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의 문자적 의미가 영적인 의미라고 거듭 주장합니다(즉,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 사람들을 약속된 메시야이신 예수님께로 이끄는 예언적 메시지). 지구상에서 가장 띄어난 기독교 및 유대교 해석가들과 함께 히브리어 성경 연구에 30년 이상을 바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확신합니다. ‘더 완전한 의미’(구약 저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구약의 영적 의미)에 대한 교회의 믿음은 구약에 대한 신약의 해석이 실제로 얼마나 참된지를 스스로 발견하는 놀라운 기쁨을 완전히 단락시킵니다!

우리 모두 베뢰아 사람들처럼 되기로 결심하면 좋겠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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