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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출 40:34-35, 레 1:1; 9:23-24).


흔히 그렇듯이, 성경 내러티브를 해석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은 이야기 줄거리의 더 큰 맥락 안에서 이전 이야기와 평행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정상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놀라운 일과 출애굽기의 마지막 구절, 레위기 서문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산 꼭대기에 머물렀습니다(출 24:15; 40:34);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임재의 정상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출 24:16a; 40:35); 여호와께서 그의 영광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출 24:16; 레 1:1); 그리고 일정 기간의 기다림 끝에 모세는 마침내 하나님 임재의 소멸하는 불 속으로 들어갑니다(출 24:17-18; 레 9:23-24). 출애굽기 24:15-18은 간단히 말해서 출애굽기 40:34 ~ 레위기 9:24입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두 이야기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의 성소는 고정된 산입니다. 출애굽기 40장에서 하나님의 성소는 이동식 장막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속으로 홀로 들어갑니다. 레위기 9장 23절에서 모세는 아론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갑니다. 


저자는 우리가 성막을 새로운 시내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하나님께서 자신을 말씀하시고 계시하시는 곳, 전적으로 완전히 거룩한 곳으로 여기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에 살고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 도달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순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당신이 시내산에 계셨던 것처럼 성막에서도 현존하시며, 실제적이시고, 영광스럽고 거룩하시다는 것을 그들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동물의 가죽으로 입혀졌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육신을 입었을 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새 시내산처럼, 하나님이 임재하신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말씀하시고 계시하시는 분, 전적으로 거룩하신 분으로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먼 곳으로 순례를 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존재하며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8:20).


그분은 2천년 전 예루살렘 거리를 걸으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키예프나 켄터키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도 실제적이고 영광스러우십니다. 물론 이스라엘 여행이 모든 신자가 경험해야 할 일이지만, 통장에 한 푼도 없는 카트만두에 살고 있는 늙은 그리스도인 과부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것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원근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내시며 거하시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골 2:9-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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