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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이중적 의미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예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구절의 이중적 의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신자들은 이사야서 53장을 약속된 메시아에 대해 말하는 성경 선지자의 분명한 예로 인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나사렛 사람 예수가 제어할 수 없었던 그분의 출생과 어린 시절과 사건들에 관한 다른 많은 예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메시야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입니다(미 5:2).


처녀에게서 나실 것입니다(사 7:14).


그는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입니다(창 49:10).


그는 애굽에서 나올 것입니다(호 11:1).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사 11:1).


그리고 그분의 생애 동안 그분이 행하실 다른 불가능한 기적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35장 5-6절에 예언된 대로 그분은 문둥병자를 고치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절름발이로 기뻐 뛰게 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표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시 2:12, 잠 30:4)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사 9:6-7, 렘 23:5-6, 슥 2:10)이다는 예언들도 있습니다. 또한 메시아가 죽게 되는 방식에 대한 많은 예언이 있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에 그의 죽음의 시기와 방식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난 문제였습니다.


그는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끊어질' 것입니다(단 9:26).


그의 손과 발이 찔릴 것입니다(시 22:17).


그는 처형되기 전에 조롱과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사 53:4-8).


그의 친구가 그를 배반할 것입니다(시편 41:9).


그는 십자가에서 식초를 받을 것입니다(시 69:21).


그의 뼈는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시 34:20)…기타 등등.


유대인들은 왜 볼 수 없을까요?


당신은 이러한 예언들과 그와 유사한 더 많은 예언들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백 개가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된 확신을 가지고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동정녀 탄생? 정말요?) 묘사된 대로 정확히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왜 유대인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하기 쉽습니다. 왜 그들은 볼 수 없습니까? 글쎄요. 대부분의 이런 예언들이 이중적 의미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종종 예언의 한 면만 보고 유대인들은 다른 면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가서 5장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적으로 완벽하게 정확하게 예언된 예수님의 탄생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이 미가서 5장을 보면 마지막 때에 영웅적인 용사가 원수를 무찌르려고 오는 것을 봅니다. 한번 보시되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읽으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렇게 해 보십시오—실제로, 재빨리 한번 살펴보십시오—성경이 없다면 여기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는 것을 보려고 시도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성경 예언은 이렇게 작동합니다. 그것이 이사야서 61장(가난한 자들을 위한 좋은 소식과 주의 보복의 날)이든 이사야서 9장(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남과 하나님의 왕국이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며, 악인들의 징벌함)이든, 아니면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예언이든 상관없습니다.


두 개의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구절에서 용사로 오시는 메시아를 보도록 그들의 시각을 조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그대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은 첫 번째 성육신이 이 구절들 중간에 있었다는 것을 보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 그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영접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닙니다!


이중적 의미가 보이지 않을 때


세례 요한은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정말 그가 이해했습니까? 그가 그의 사촌인 나사렛 예수를 소개한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1-12).


그는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러 오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또한 마지막 심판에 임할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불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한은 초림과 재림을 동시에 보았기 때문에 그가 사형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왜 메시아가 그를 감옥에서 꺼집어 내지 않고 행악자들을 날려버지지 않는지 그 혼란스러움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2-6).


세례 요한은 그의 사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님은 왠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참으로 키질하고, 타작하고, 불태울 메시야인 것을 알았지만, 한꺼번에 두 번의 오심을 알려 준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예언에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예언대로 복수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지만 요한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단지 시기의 문제였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처음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선언했을 때 요한은 매우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제자들로 하여금 가서 확인하도록 만듭니다—제가 잘못 이해했나요? 하나님을 의심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실족하게 하는 유혹이 강했을 것입니다.


20:20 비전과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


예수님 당대의 유대인들은 잔인하고 굴욕적인 죄인의 죽음을 당한 나사렛 출신의 이 비천한 목수가 그들의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보는 것을 보기에는 이 첫 번째 오심에 너무 안주하고 집착합니다. 그들은 보복과 형벌을 집행할 유다 지파 출신의 용사를 받아들일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기대해 온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백성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예언대로 행하실 때를 놓칠 뿐만 아니라 반대까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본 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비천한 성육신에 상심하여 예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당신의 계획을 반대했다는 말이 결코 들리지 않게 하소서! 우리는 주와 더불어 준비하고 기다리며 지상에서의 주의 역사를 기뻐하며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경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이 힘든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유대인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재림에 대해 그리고 이스라엘과 메시아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종종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듯이, 여러분이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를 알면 그것은 낮을 보는 것처럼 명백합니다.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적 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우리는 두 가지 렌즈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둘을 함께 볼 수 있는 날들입니다. 점점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마침내 히브리어 성경에서 그분을 보게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의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입니다. 검을 들고 오시는 유다 지파의 사자인 용사 메시아를 알아가는 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구절들을 다시 살펴보고 세례 요한이 시대를 앞서 보았던 것을 보십시오. 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이제 그분이 오십니다. 이번에는 당나귀를 타신 비천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심판을 집행하고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오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정말 기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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