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족성이 중요한가요?
- 원포이스라엘
- 2024년 12월 9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12월 11일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수 7:25-26).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지만, 우리의 죽음과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추억을 또한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전 7:1). 아간의 죽음을 묘사하는 특정한 문구는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더 큰 문학적 의도의 일부입니다.
여호수아 7:25-26을 단어의 직물망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각 단어가 얼마나 신중하게 책의 더 큰 직물작품에 엮어졌는지 보게 될 것입니니다. "그의 온 가족과 함께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은 아간이 여리고의 가나안 사람들과 똑같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라합은 분명히 예외입니다(수 7:25와 수 6:24를 비교해보세요). 그의 죽음의 장소를 표시하는 "큰 돌무더기"가 있다는 것은 미래 세대가 아간의 기억을 아이 왕의 시체가 "큰 돌무더기"로 표시된 것과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수 8:29). 오늘날까지도 아간은 가나안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한(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나빴던) 이스라엘 사람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민족(또는 성별)에 대해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적 성품"보다 "우리의 피부색"에 더 중점을 두는 이 "진보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가나안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믿음의 전당에 들어갔지만(히 11:31), 이스라엘 사람 아간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아간은 우리 메시아와 같은 지파 출신이었지만, 그는 우리 민족에게 야기했던 환란으로만 기억됩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10월 7일의 비극과 보수적 우파에 속한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전이되고 있는 악성적 반유대주의로 인해 저와 같은 많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우리 민족의 실존적 두려움과 우려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해졌습니다. 하지만 제는 제가 죽게 될 때, 유대인들을 사랑했던 이스라엘인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제 원수들을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던 유대인 메시아 제자로도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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