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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처럼 기도하기

그 해는 다리오 왕의 통치 원년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바빌론 포로 생활이 곧 끝날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쓰기를,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단9:2-3).


그는 그 예언이 머지않아 성취될 것임을 깨닫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온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어차피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줄 알았다면 왜 구해야 했을까요? 이 강력한 기도의 사람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선, 다니엘이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이해하려 노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의 예언을 미래 사건에 대한 지침으로 올바르게 보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예레미야의 예언과 그것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깨달은 방법입니다. 아모스 3장 7절에서 말하기를,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다니엘은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여했고 그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진리임을 믿었습니다.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는 중동과 전 세계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복음서에서 앞으로 올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꺼려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우리를 위해 모든 정보를 성경에 두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유명한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도 성경을 깊이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모든 신자의 책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를 놓쳤던 유대인들이 혹독한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수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그는 모든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다니엘서에 접근했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연구했고 「당신들의 심판의 날과 다가올 세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17세기와 18세기 초에 글을 썼지만 유대 민족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기간에 대한 그의 생각(다니엘의 예언에 근거)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그는 성경 예언에 비추어 이스라엘의 회복과 그것이 나머지 세계에 의미하는 바에 대해 많은 글을 쓰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20세기 중반 이스라엘 국가의 재건이 오래 전에 예언자들이 자세히 설명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임을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시려고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손에 있는 정보를 소화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할까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예언 중 일부를 알고 그 예언에 대한 기도를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둘째,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자기의 생각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을 고치시도록 요청하지 않고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기로 모험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세부 사항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영역의 세부 사항에도 관심을 가질 때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 일까요?

자녀가 가족의 일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자녀는 대략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하고 있는 것을 믿고, 아버지를 믿으며, 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이 얼마나 신뢰와 존경 그리고 관계에 대한 열망의 표현하는 것인지요. 종종 아이들은, 특히 어릴 때는, 돕는 일을 잘하지 못하지만, 아빠를 도와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최우선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관계.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참여함을 통해 그분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실제로 존 웨슬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협력 없이는 행동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그의 책 「기독교적 완벽에 대한 단순한 설명」에서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라고 적었습니다. 저는 그 진술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개념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의 협력 관계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맡겨진 지상 사명이 주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계획이라는 사실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계획이 실현되도록 기도함으로써 그분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예와 아멘!"을 표현하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함으로써. 그가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목적에 동의하는지요? 우리는 그것들에 마음을 모으고 그것들을 위해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더 관심이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양방향의 대화라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젊은 신자로서 저는 다니엘의 모범을 따르기 시작했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저는 곧 제가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가 듣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 그리고 그 관계는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때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 3회의 기도는 저의 영적 궤도를 유지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 우리의 필요, 우리의 소망을 나눌 수 있고 그분도 그분의 생각과 소망을 우리와 나누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집니다. 우리가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면 사물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의 본질을 확립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생각해 보면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입니다. 그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습니다. 그는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는 공급자이시고 우리는 그를 의지합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그는 강합니다. 그분은 왕이시며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홀로 통치하고 결정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진리를 기억하는 대신에 우리를 도와야 할 종이나 일종의 우주적 힘으로 간주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앉아 기도할 때, 우리가 실제로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생각할 때 그러한 가식은 떠나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그분의 보좌 앞에 자신을 내어놓을 때 관점을 유지하고 궤도를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운명에 신경 쓰기도 전에 우리 자신의 작은 삶에 쉽게 압도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앉아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은 관점을 회복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됩니다. 그분은 우리가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그분의 통치를 환영할 때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특히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알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니엘의 기도와 금식은 기원전 6세기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 또한 오늘날 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드러내는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의 당신의 언어는 정말 변화를 가져옵니다. 당신은 하늘 사업에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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