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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언약의 창시자가 오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4-9).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와 모세 사이의 명백한 비유로 시작됩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잘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르심에 강한 저항을 나타냈습니다(렘 1:6과 출 4:10 비교). 모세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비교는 예레미야서 1장 9절에 나옵니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 문구는 신명기 18장 18절에서 모세와 같은 미래의 선지자를 일으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거의 문자그대로 나타나며, 놀랍게도 예레미야에 대해 언급하는 한 구절 외에는 히브리어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8; 렘 5:14 참조).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모세와 같은 약속의 선지자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독특하게 비교하는 걸까요? 예레미야는 모세와 같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지도 않았고(신 34:10-12), 자기 백성을 포로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와 같은 구속자가 아니었습니다(출 3:10). 오히려 예레미야는 자신의 뜻에 반하여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렘 43:1-7).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 비교는 예레미야의 예언적 소명에 대해 매우 유용하게 조명해 줍니다. 모세는 돌판에 새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져온 시내산 언약의 선지자였습니다(출 24:12). 예레미야는 율법을 우리 마음에 새길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한 새 언약의 선지자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 33).


예레미야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과 끔찍한 고통이 만연한 시대에 예레미야는 새 언약의 창시자께서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가고 계심을 상기시켜 주는 신성한 징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암울한 시대에 예레미야의 약속이, 우리의 구속주가 곧 오실 것이며 새 언약의 모든 약속이 마침내 성취될 때 빛이 어둠을 정복할 것임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신성한 징표가 되도록 하십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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