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에 대한 완벽한 해독제

가스 누출처럼 쓴맛도 처음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약간의 냄새만 날 뿐이죠. 하지만 완전히 깨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것이며, 영적으로 치명적인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쓴맛(씁쓸함)은 교활합니다
쓴맛은 우리에게(또는 우리 안에) 몰래 찾아오는 암처럼 자라날 수 있지만,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룰 확실한 방법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의로운 분노로 가득 찬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온라인에서 여러 열정적인 글들을 읽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믿는 이들이었지만 왠지 깨끗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불의에 반대하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옳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의로운 분노는 좋지 않나요? 제가 (마음속에서) 알아채기 시작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씁쓸함(원망, 냉소)'이었습니다. 그것은 저 또한 너무 자주 빠져드는 함정이였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좋지만, 분노가 쓴 마음으로 변질된 명분을 위해 나설 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적의 손에 들린 무기가 됩니다.
적에게 휘둘리지 마십시오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갈때 아주 잔인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입술에 갈고리를 꿰고 서로를 사슬로 엮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있듯이, 그들이 갈 방향에 있어서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갈고리를 잡아당기는 사람을 따라야 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쓴맛의 갈고리에 꿰일 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의와 공의를 위한 사역에 동참하는 대신, 쓴 마음은 원수에게 발판을 열어 사탄이 우리를 조종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쓴 마음에 있을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며 그 갈고리를 쥔 자에게 얽매이게 됩니다. 마치 숙련된 외과 의사의 손에 들린 깨끗하고 소독된 메스가 되는 대신에 우리는 끔찍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우려고 할 수 있지만 쓴 마음에 빠지면 우리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원수의 계략에 이용당하는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의 분노에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이 순결은 거의 늘 용서가 필요한 죄성의 분노로부터의 회개를 요구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
쓴맛에 대한 한 방의 해독제: 용서
쓴 마음은 용서라는 정화의 불길 속에서 완전히 녹아 사라집니다. 우리가 분노할 때 그 안에 섞여 있던 모든 불의함은 용서의 힘을 통해 깨끗이 씻겨 나갑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를 개인적인 관계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용서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특정 정당, 사회 운동, 국가, 조직, 기업, 혹은 유명인에 대해 극심한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면, 이제는 무릎을 꿇고 용서해야 할 때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1-32)
놀랍게도, 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저는 특정 정치인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인에 대한 분노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을 비추어 깨달음을 주시고 나서야, 저는 제 안의 거룩하지 못한 분노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근심하게 했던 것입니다.
용서는 마치 쓴 마음이라는 암세포에 방사선 화학 요법을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씁쓸함’이라는 암을 완전히 제거하여, 부정한 분노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신지 여쭐 수 있게 되며, 인간적인 분노와 판단을 하나님의 사랑스런 시선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나 계획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미 당신만의 놀라운 해결책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속 씁쓸함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동역하기로 한다면, 그분께서 세우신 훨씬 더 위대한 계획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1-32)
분명 하나님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그릇, 곧 거룩하고 그분 보시기에 기쁜 그릇, 성별되어 그분의 완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준비가 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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