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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기도하는 유대인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7-10).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기독교인의 믿음은 후기 이방인 기독교의 왜곡이라는 대중적인 의견이 있습니다. 이후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왜곡이 실제로 발생했지만, 이 경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신화와는 정반대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왜곡은 소위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부정하기 시작했을 때 발생했으며, 문맥에서 벗어나 왜곡된 구절들의 잘못된 해석에 근거하여 그분을 일종의 창조된 반신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0의 구절들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9절에서 "능력"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그리스도의 능력"). 이는 바울이 세 번 기도했던 주님(‘퀴리오스’)이 9절에서 바울에게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는 뜻입니다. 잠시 멈추고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교의 모든 안팎뿐만 아니라 성경을 암기하고 있었던 1세기 바리새인이 절박한 상황에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기독론은 거의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울의 서신이 제2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기록되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고려할 때(고린도후서는 주후 56년경에 기록됨), 이것은 메시아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메시아닉 유대인의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적용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세 번 기도한 대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아버지께 고난의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던 바로 그분이십니다(마 26:44).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건져냄으로써가 아니라 죽음을 물리치기 위해(능력)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써(약함) 신성한 능력이 완성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구조를 요청하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아니다"와 "아직 아니다"에 대한 우리의 가장 깊은 투쟁을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에게 그것들의 목적을 상기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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