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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

아론 헤크트의 게스트 블로그


형제 자매 여러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에 보내는 수 많은 기도와 헌금 그리고 노력과 에너지들이 낭비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돕는 대신에 방해하는 일에 사용됩니다. 그것이 바뀌기에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들을 돕고 싶다면 고통스럽겠지만 깨달으셔야 매우 중요한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 1번은 이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말하거나 종교적인 생활 방식을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들이 거의 읽지 않는 책인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과 별로 닮지 않았습니다.세속적 이스라엘 유대인들(인구의 약 2/3을 차지함)은 세상의 다른 세속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성경을 읽지 않는 반면, 종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이유는 랍비들만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고, 모든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은 랍비들이 성경에 대해 쓴 주석이라고 평생 동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성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평범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경의 하나님과 그들 자신의 관계를 전혀 발전시키지 않으며, 그들이 느끼는 거룩한 존경심은 하나님이 아닌 랍비들에게 바쳐집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에 와서 종교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정통 유대인들과 그들의 랍비들이 그들의 자연스런 동맹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세속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기껏해야 중립적인 집단에 불과하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노력은 시간 낭비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많은 시간과 돈을 잘못 사용하게 하고 잘못된 노력으로 인도합니다. 저는 이 나라의 상황이 개선될 경우 이것을 변경해야 할 목록의 맨 위에 놓을 것이고, 이것은 불편한 진실 2번으로 이어집니다.

불편한 진실 2번, 이스라엘의 현대 국가는 깊은 불의와 죄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놀라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27-29에서 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정말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텔아비브는 세계에서 가장 게이 친화적인 도시 중 하나이며 이스라엘 관광성은 복음주의 기독교 순례자들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로 오도록 유인하는 것만큼 동성애 관광객들을 텔아비브로 유치하는 데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놀랍지만 모두 동시에 방문하는 이 두 그룹의 관광객들은 이 작은 나라에서 서로를 비켜 다니게 됩니다.

위의 본문에서 언급된 "남은 자"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이며,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에 아주 소수의 남은 자입니다. 좋은 소식이지만, 이스라엘 밖의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과는 거의 관련이 없고 이것은 불편한 진실 3번으로 이어집니다.

불편한 진실 3번;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하는 대부분의 노력은 시간과 자원을 완전히 낭비하는 것이거나, 분명 좋은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실제로 역효과를 낳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모두 이스라엘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디아스포라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이곳에 사는 유대인들이 북미, 유럽, 남아프리카 등 주변에 사는 유대인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훨씬 더 많은 비유대인 사이에 살고 있는 소수 그룹인 반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자신의 나라에 사는 다수 그룹입니다. 이것은 많은 것들에 있어서 매우 다른 태도와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들에게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철학적-셈족주의/기독교 시온주의/히브리 근본주의 성향의 많은 사람들은 "토라를 준수하는 생활 방식"으로 사는 것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복음에 더 열리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당신이 코셔 음식을 먹고, 창조주의 이름을 “G-d”라고 쓰고, 그분을 “하셈”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예수님과 신약에 대해 궁금해 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들이 당신이 탈무드를 공부하며 중세의 유명한 랍비들의 주석에 대해 그들에게 토론해보자고 요구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정말 그들로 복음에 대한 갈증이 생기도록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따르자면 당신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한 가지 행동은,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를 공부하고 코셔를 지키고 하는 등등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들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치르신, 죄를 위한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유대인들과 이야기할 때 그것은 절대 언급(!!!)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화를 내고" 당신과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그들은 결코 복음을 듣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쩌면 그게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탈릿을 쓴 이방인 기독교인이 “예슈아는 나의 코헨 하가돌”(대제사장)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함께 탈무드를 공부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메시아를 믿게 된 이스라엘 유대인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에서 가능한 사역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누군가가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염려 없이, 하나님, 그들의 메시아, 탈무드, 랍비, 성경에 대한 진실을 말하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훌륭하게 작동합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믿음을 갖게 된 수백 명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만났기 때문에 압니다. 이것을 적용한 원포이스라엘(One for Israel Ministry) 및 이스라엘 성서공회(Bible Society) 및 다른이들의 사역을 통하여 (솔찍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 사역들 중 어느 곳에서도 일하지 않습니다. 아는 많은 이들이 그곳에 있지만) 초대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시작된 1세기 이후, 어느 때보다도 지난 몇 년 동안에 더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들어 왔습니다.

다시 한 번, 아무도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로마서 9:30-33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런즉 무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로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들으셨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거치는 것”입니다.

이방인 기독교인은 유대 민족을 “화나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유대 민족은 기분이 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기독교 목사와 그가 이끄는 순례자 무리가 정통 랍비들에게 아양을 떨며 그들이 말하는 모든 말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열광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평범한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그들을 질투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그들을 궁금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그들이 당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원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까?

제 경험과 관찰에 따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을 질투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 메시아와 가진 관계 때문에 두려움없이 희망과 기쁨과 사랑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입니다.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돈을 청구하며 그들의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요구하는 랍비들의 도움 없이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의 성경을 스스로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질투심을 가지게 됩니다.

종종 이것은 종교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예루살렘의 정통파 공동체에서보다 동성애자 친화적인 텔아비브에 사는 세속적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더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만 때로는 분명한 사실을 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적 율법 준수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준수하는 생활 방식을 따르지 않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보다 복음을 듣는 데 훨씬 덜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락한 지역밖으로 여행하기

요약하자면, 이 블로그가 이미 너무 오래동안 있어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서 밭은 추수할 수 있도록 무르익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께서 추수한 것을 가져오도록 밭으로 보내시는 일군들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장미빛 안경을 벗고, 동화를 버리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불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러 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실, 이 특별한 수확의 들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안락 지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안락한 지대에서 벗어나 추수할 밭에 들어가는 여행을 하는것은 바울이 로마서 11장 11-15절에서 쓴 것처럼 할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진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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