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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믿었던 자들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나의 날은 길어진 그림자 같고 나는 풀 같이 시들어가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이름이 대대에 이르리이다”(시 102:11-12). 신약성경의 유대인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참되고 완전하고 완벽한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을 것이고 종종 주장합니다. 예수의 완전한 신성의 교리는 후기 그리스-로마 기독교의 왜곡된 열매였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저는 히브리서의 유대인 저자가 이런 메모를 받았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시편 102편의 원래 메시지와 이 시편을 예수님께 적용한 히브리서 저자를 고려해야 합니다. 


원래 문맥에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죽음을 여호와의 신적 영원성과 비교합니다(시 102:3, 11, 20, 23-24을 102:12, 25-27과 비교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태초에 계셨을 뿐만 아니라, 태초 전에 계셨습니다(25절). 하나님은 끝까지 거기 계실 뿐만 아니라 끝 이후에도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26절). 시편 102편은 맥락상 오직 진실하고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 속한 신성한 속성에 대한 신학적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옵소서"(12절). 


이제 히브리서 저자가 히브리서 1장 10-12절에서 이 시편을 인용한 것을 생각해 봅시다: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시편 102편의 여호와로 명시적으로 밝힐 뿐만 아니라, 아무런 유보나 모호함이나 주의없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어떻게 시편 102편에서 메시아를 볼 수 있었는지 묻는다면 (아직은)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가지 사실은 저자가 히브리어 성경에서 야웨에 관한 시편을 가져와 신약의 예수님께 직접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가 신약 정경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는 히브리서의 원수신자들이었던 메시아닉 유대인에게 엄청난 고등(그리고 완전히 유대적인) 기독론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완전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장 충만하고, 가장 높고, 가장 영원한 의미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하고 끝이 없는 구원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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