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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기념일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헤니아 브라이어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는 수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제 팔에 [문신으로 새겨진 숫자]를 보고 '이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건 아우슈비츠에서 온 것'이라고 말했고 그는 '아우슈비츠, 그게 뭐였지요?'라고 말했습니다.' … 그는 젊은 전문의 이였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성장하고 있습니다.

1월 27일은 유럽과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기념일입니다. 이 날짜는 1945년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나치의 만행에 대한 인정과 교묘한 반유대주의가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나치 독일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얼마나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지를 보여줍니다.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부가 잔학 행위의 범위나 존재 자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동안에, 다른 일부는 우리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역사를 모른 채 성장합니다.

독일 유대인 자료 청구 회의가 의뢰한 연구에 의하면 영국인 절반 이상이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에서는 10명 중 1명 이상이 실제로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를 야기했다고 믿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그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아직 우리와 함께 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지금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합니다”라고 위원회 회장인 기드온 테일러가 말했습니다.

기억 도우미

홀로코스트의 사악한 시작과 끔찍한 끝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을 기념하려고 할 때 몇몇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엄청난 규모의 살인과 이해할 수 없는 잔학 행위에 직면했을 때 공포는 우리를 압도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안네 프랑크와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부각시키고,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신발 컬렉션과 같이 고통을 개인화하여 죽은 사람들의 실제 삶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후대를 위하여 그것을 겪었던 사람들이 유대인 고난의 현실을 목록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그래버라는 19세 소년은 미래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바르샤바 게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다른 십대인 나훔 그러찌바츠와 교사인 이스라엘 리히텐슈타인이 그와 합류했습니다. 세 사람은 거대한 기록 보관소인 데이비드의 "위대한 보물"에 게토 생활의 모든 세부 사항을 기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코드명은 오이네그 샤베스(안식일의 기쁨)였습니다.

연구원들은 1942년 8월까지 신중하게 수집되고 보관된 수만 개의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일부는 일기와 수필과 의뢰된 설문조사와 시들 및 정확한 보고서 형식으로 이디쉬어, 폴란드어 및 다른 유럽 언어들로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료들 중에는 그들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썩은 생선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을 찾아내고 음식과 같은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예술가였던 리히텐슈타인이 자신과 그의 아내를 대신하여 남긴 메모가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기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 아내 겔레 섹슈타인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어린 딸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마르갈릿은 오늘이 20개월입니다.”


그들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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