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샤 베아브, 회복을 향한 갈망
- 원포이스라엘

- 8월 7일
- 4분 분량

티샤 베아브는 유대력으로 아브월 9일을 의미하며, 약 2000년 전 이날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사건은 기원전 약 650년 전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유대력 날짜와 정확히 같은 날 일어났습니다. 땅은 평평해지고 소금이 뿌려졌으며 황폐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속죄의 희생 제도를 통해 한때 그들에게 속했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시기로 택하신 거룩한 곳과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쫓겨났습니다. 성전의 거룩한 메노라와 기물들은 로마로 압송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티샤 베아브는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엄숙한 애도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첫 번째 성전도 아브월 9일에 파괴되었고, 동일한 날에 유대인들에게 다른 많은 비극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불행한 우연의 일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대교 전통 속 티샤 베아브
"아브월 9일에 우리 조상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말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첫 번째 성전과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베이타르는 함락되었고, 도시[예루살렘]는 황폐해졌습니다." (탈무드, 타아닛 26b1)
이 유대교 경전은 비극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세기에 쓰였으며, 두 번의 유대 성전의 파괴와 로마에 대한 반란 실패,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인으로 가득 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며 거부했던 사건들을 연결합니다. 또 다른 유대교 자료에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꺼렸던 것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울부짖었고, 백성들은 그날 밤 모두 울었습니다. 랍바는 랍비 요하난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밤은 아브월 9일이었습니다. 찬양받으실 거룩하신 분 그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유 없이 울었으니, 나는 [오늘]을 앞으로 올 세대에 울음의 날로 정할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때때로 사건들이 실제적인 역사적 정확성보다 개념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서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주저했던 것이 이 슬픔의 순환의 시작으로 여겨졌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탈무드는 적절한 대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쁨은 제한됩니다. 아브월 9일이 있는 주간에는 머리를 깎거나 옷을 빨는 것이 금지되지만, 목요일에는 안식일을 기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아브월 9일 전날에는 두 가지 요리로 된 식사를 하거나 고기를 먹거나 포도주를 마실 수 없습니다. 랍비 시므온 가말리엘은 "식단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은 금식하고 애통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기쁨을 표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 애가를 함께 읽으며 적절한 추모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따르면 두 성전이 파괴된 이유는 하나님의 형벌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7년마다 땅을 쉬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것 때문에 예레미야 26장 18절에 약속된 대로 바벨론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 졌습니다.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두 번째는 로마인들의 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이 이르리니 네 원수들이 너를 둘러 흙을 쌓고 사방으로 에워싸서 너와 그 가운데 있는 네 자녀를 땅에 쓰러뜨릴 것이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권고받는 날을 알지 못하였음이니라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3-44)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위대한 주말 이후에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죄에서 깨끗해지고 그분의 거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분은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전 없이도 하나님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누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유대인들이 느끼는 황폐함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거 교회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매우 냉담했으며, 때로는 로마인들처럼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1세기 이후 기독교인과 유대 민족 사이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양측 모두 적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이유는 형제애의 부족과 근거 없는 증오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타인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사랑의 부족은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티샤 베아브에 "기독교" 국가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비극:
제1차 십자군 전쟁은 유대력으로 4856년 아브월 9일(그레고리력으로는 1096년 8월 15일)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첫 달에 1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고 프랑스와 라인란트의 유대인 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유대력 5050년 아브월 9일(서기 1290년 7월 25일)에 유대인들은 영국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유대력 5252년 아브월 8일-9일(서기 1492년 7월 31일)에 유대인들은 스페인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유대력 5702년 티샤 베아브(1942년 7월 23일) 전날, 바르샤바 게토에서 트레블린카로의 대규모 유대인 추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 14-1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맏아들'인 이스라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교회는 동생으로서, 슬프게도 여러 세기 동안 (특히 암흑기에) 유대인들이 받은 고통스러운 상처에 대해 조롱하고, 위로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옆에서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겪으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곧 살리실 것이며, 나사로에게는 어차피 영원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고통받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형제애로 그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향한 갈망
유대인의 본성은 구원과 회복에 대한 깊은 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고통을 인정하고 그 안에 안주하는 동시에, 약속된 내일의 희망을 갈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충분히 알고 있나요? 만물이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과연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갈망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종교인 단체들이 세 번째 성전을 계획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 곧 메시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세상의 궁극적인 구원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18-25)
네, 현재의 고난이 있습니다.
네, 탄식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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