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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의 기적과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업적


“저는 저를 부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조상들의 땅에서 이스라엘과 그 언어를 부활시키라!’”


이스라엘은 매년 히브리어의 날을 유대력 테벳월 21일로 기념합니다. 이는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인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히브리어 생일’입니다.


우유팩 같은 일상용품에도 히브리어를 기념하는 특집이 등장하고, 이날을 기념하는 가족 행사들도 계획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브리어에 대해 상당히 흥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히브리어의 독특성

비록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이고(가장 오래된 언어는 아닐지라도)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지만 오늘날 히브리어 사용자들은 여전히 고대 문헌의 성서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 사용자들에게 셰익스피어가 어려운 것처럼 성서 히브리어가 현대 히브리어와 약간 다르지만 여전히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근 중심의 어휘들은 여러 겹의 의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글자의 모양에도 의미가 있다고 믿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포함하여 일부 문법 구조에는 심오한 특이점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인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의 언어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과 바울이 히브리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가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예수님께서 아람어로 말씀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문에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히브리어로 말씀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행 26:14). 나중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동료 형제들에게 히브리어로 연설합니다(행 21:40, 22:2). 히브리어는 여러 포로 생활과 점령이후에도 유대 민족의 언어로 여전히 살아 움직였습니다.

히브리어는 매우 특별한 언어일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한 세계 유일의 언어입니다.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동 기도와 축복과 함께 엮는 직물처럼 유대교 종교 의식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아닌 성스러운 언어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또는 명확하게/ 명확한]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문자적으로, 어깨를 맞대고, 한 마음으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습 3: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렘 31:23)


실제로 유대 민족은 언젠가 함께 모여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 히브리어로 “바룩 하바 베 셈 아도나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이것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입니다(마 23:39).


히브리어를 부활시킨 벤 예후다의 노력


그러나 히브리어를 예배 의식의 사어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공용어로 회생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삶과 그의 가족은 그가 19세기 후반에 들었던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겠다는 결심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 목소리를 들은 경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가리아는 1877~78년 러시아-터키 전쟁 중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했는데 그것이 젊은 엘리에제르에게 영감을 주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히브리어 사전을 소개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합니다.


“이 기간 동안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빛이 비추는 것처럼 순수하고 빛나는 광선이 제 눈앞에 번쩍였고 강력한 내면의 목소리가 제 귀에 울려 퍼졌습니다.”


민족적 자치를 갈망하는 불가리아 국민의 마음을 공감하면서 그는 마음이 열려 있었고 “조상의 땅에서 이스라엘과 그 언어를 부활시키라”고 촉구하는 “강력한 내면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와 가족의 삶을 히브리어를 생활언어서 부활시키는 데 바쳤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제 안에 민족주의 개념이 커질수록, 저는 한 민족에게 있어서 공통 언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종교적 히브리어 교육을 받으며 자란 벤 예후다는 세속적 계몽사상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실제로 살아있는 민족이 될 수 없듯이, 조상의 언어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살아있는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엘리에제르 페렐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글에 유다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E. 벤 예후다”라는 이름으로 서명했고, 그때부터 그는 이 이름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1881년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에 그의 아내 드보라와 결혼했고,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히브리어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이를 고대 이래로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최초의 아이로 키웠지만 엄청난 대가를 치렀습니다. 아이는 다른 언어를 접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접촉으로부터 차단당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단호했고 결국에는 성공했습니다.


성경의 어휘에는 아이스크림, 자전거, 오믈렛, 손수건, 수건 및 기타 수많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현대 현실에 맞는 새로운 어휘를 발명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대적 과제 앞에 그는 구약성경의 어근 어휘들을 사용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했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와 기차라는 단어는 성경의 전차에 해당하는 단어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신탁통치 시대에 영국은 히브리어를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공식 언어로 선언했고, 불과 한 달 뒤인 1922년 12월 16일에 그 일을 성사시켰던 사람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합니다.


유대 역사가 세실 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벤 예후다 이전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말할 수 있었고, 벤예후다 이후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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