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말씀이 육신이 되어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로고스)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1:1-2). 저는 최근에 교회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이라고 불리는 신성한 실체에 대한 우상 숭배적인 교리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한 유명한 랍비의 팟캐스트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랍비가 어떻게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에서 요한복음의 서문보다 더 유대적으로 보이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역시 유대적으로 보입니다!).


말씀의 유대성이 분명한 곳 중 하나는 타르굼 옹켈로스입니다. 토라의 아람어 번역본인 이 책의 주요 목적은 제2성전 이후 유대교의 신앙과 전통을 장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9장 3절과 8절의 번역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서 히브리어 원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보다 앞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 길을 예비하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그의 말씀/메이므라]가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그분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그분의 말씀/메이므라]가 너[너의 지지]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 31:3,8; 옹켈로스, 메쭈다 출판사, 2009). 그리고 창세기 1장 3절을 아람어로 번역한 또 다른 구절을 고려해 보십시오. “여호와의 메이므라(말씀)가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으니 그의 메이므라의 명령대로 되었더라”(창 1:3; 타르굼 네오피티). 이러한 토라의 유대인 번역에서 "메이므라"(말씀)는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의 완전한 대표자로서 기능하는 사람(의인화)입니다. 신약성경이 헬레니즘 기독교의 비유대적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신약성서를 원래 배경에서 제거하여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그 메시지는 항상 오해될 것이고 역사의 실제적 예수님은 완전히 왜곡될 것입니다. 이 랍비가 시도하는 것처럼,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육신이 되신 말씀을 믿는 것보다 더 유대인적인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4)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4-18).



조회수 25회댓글 0개

관련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