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일상적이 될 때
- 원포이스라엘

- 5시간 전
- 2분 분량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말 1:6-7, 11, 14).
포로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과 성전을 재건하러 떠날 때의 흥분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백성들은 일상적인 종교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양 떼 중에서 가장 약하고 병든 짐승들을 성전에 제물로 바쳤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해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삶은 고달팠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서 말라기는 위대한 하나님 이름의 장엄함을 잃어버린 채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종교적 활동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결코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남은 시간과 자원을 하나님께 드리지만, 가장 좋은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 남겨둡니다.
말라기는 비유와 유추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안일함에서 벗어나도록 일깨우려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그렇게 업신여기거나 종이 주인을 그렇게 업신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6절). 누구도 사시에다 결함이 있는 양을 총독에게 선물로 바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7:12).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조금씩 드리는 것은 그분의 관점에서 보면 사기꾼과 같은 행위입니다(14절).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 그분이 진정으로 받으셔야 할 것을 드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시며, 만국 가운데서 두려워하실 위대한 왕이시므로,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헛된 종교심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이 그분께 속한 것인지 묻는 것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받으실 자격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