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메시야의 복된 길
- 원포이스라엘
- 9월 22일
- 2분 분량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렘 15:15-17).
예레미야와 시편 1편의 복있는 사람, 그리고 시편 2편의 박해받는 메시아 사이의 유사점은 명백합니다. 시편 1편의 복있는 사람처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큰 기쁨을 발견하며(렘 15:16과 시 1:2 비교) 비웃는 자들의 모임에 앉기를 거부합니다(렘 15:17과 시 1:1 비교). 시편 2편의 박해받는 메시아처럼 악한 자들이 예레미야를 쫓고,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비난을 견뎌야 합니다(렘 15:15과 시 2:1-2 비교; 시 69:7[8]; 89:50[51] 참조).
예레미야의 "자화상"에서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레미야의 자기 묘사는 시편 1편의 축복받은 사람과 시편 2편의 박해받는 메시아가 반드시 두 명의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이 두 시편은 의도적으로 한 개인에 대한 통합된 모습을 제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윗의 토라에 대한 사랑(시편 19편, 119편)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겪은 끔찍한 고난(시편 22편, 69편 참조)은 시편 1편과 2편이 함께 다윗과 같은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둘째,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예레미야를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삶을 복있는 사람과 고난받는 메시아에 비유함으로써, 우리가 그를 메시아적 인물로 바라보도록 격려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고난받는 종에 대한 이사야의 모습을 반영합니다(사 50:4-7; 53:7-9 참조).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윗 왕과 예레미야 선지자의 집단적 경험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얼굴이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시 2:7, 12 참조). 그분은 우리의 축복받은 메시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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