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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죄일(욤 키푸르)에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대속죄일인 욤 키푸르(יום כיפור)가 다가옴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 신자들은 전국적인 금식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금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메시아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단번에 처리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 그들의 금식은 아직 그분과 그분께서 그들을 위해 큰 값을 치르고 사신 속죄를 모르는 그들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중보 기도의 금식입니다.


1인 작업

욤 키푸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대제사장, 황소, 두 마리의 염소가 참여하는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죄를 고백하고 속죄하고 모든 죄를 깨끗이 씻도록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입니다. 오직 이 날에만 그리고 대제사장만이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가 없이 언약궤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속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모든 대속죄일 의식은 하나님께서 레위기 16장에서 명하신 대로 매우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전도 없고 지성소도 없고 법궤도 없고 황소의 피와 아사셀 염소로 이 모든 의식을 세심히 행할 대제사장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서기 70년경 성전이 파괴된 후, 망연자실한 유대인 지도자들은 시편 141장 2절과 같은 성경의 몇몇 부분을 언급하면서 제사를 기도로 대체하는 해결책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호세아 14장 2절은 동물 희생의 피 대신에 기도의 언어가 충분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데 사용되는 또 다른 구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호14:1-2)


포로 생활 중 성전이 멀고 제사를 드릴 수 없을 때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던 것처럼, 이제 유대인들은 제사 대신에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오늘날 기도는 제사와 마찬가지라는 사고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비록 성경은 피가 없는 속죄는 없다고 말하지만 말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1)


깨끗한 명부

로쉬 하샤나(나팔절)와 욤 키푸르(대속죄일) 사이 경외의 10일간은 용서를 구하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집중적인 기도와 성찰의 시간입니다. 사람들이 면죄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에게 “쉬운 금식”과 “좋은 서명”을 축원합니다. 즉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가 우리 죄를 속함 받을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일 년에 한 번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말입니다!

우리는 연례 행사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깨끗함이 필요할 때마다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예수님의 보혈을 근거로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과 단번에 화평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직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해가 질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자신들의 죄를 반성하며 금식하고, 회당 예배에 갈 때 흰 옷을 입으며, 운전과 일상 활동을 자제합니다. 가족을 속죄하기 위해 희생용 닭을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거나 자선단체에 선물을 주는 것과 같은 다른 전통도 있습니다. 해마다 자동차를 테스트하듯,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삶을 감찰하시는데 당신이 생명책에 기록될지, 죽음의 책에 기록될지, 아니면 선행과 악행이 판결받지 않은 상태의 어정쩡한 상태에 있을지를 결정하신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이 모든 개념이 죄의 참회에 대한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문제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기 17장에 기록된 내용을 확장합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는 이제 유대 민족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9:12-14)


이스라엘에서 이 진리의 빛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대속죄일에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사신 속죄에 대한 진리를 여호와께서 밝혀 주시기를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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