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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와 하나님께로 가는 관문

실로에 있던 성막을 방문한 가장 유명한 방문객 중 한 사람은 한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한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들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나 마음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한 계절에서 다음 계절로 전환하는 나팔절에 이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냥이 아닙니다. 이것은 와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보석으로 가득 찬 문턱 이야기입니다.


관문으로서의 실로

실로의 고대 유적지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으며, 한때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던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성막은 사사 시대 거의 400년 동안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문으로서 실로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을 찾거나 기도와 간구를 위해 올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중재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고 하나님 집의 문지기 역할을 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하고, 백성을 섬기고 하나님의 도를 가르침으로써 하나님을 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만날 수 있는 장치, 즉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로 성막을 제정하셨습니다.
실제로 성막은 “회막”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제사장들이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대신에 방해를 했습니다. 확실히 사사 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의 민간적, 영적 리더십은 점점 더 약화되었고, 이스라엘은 그 4세기의 대부분을 속박과 하나님의 심판 아래 보내게 되었습니다. 엘리 대제사장은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행실이 나쁜 두 아들이 있었고 하나님은 이제 새로운 장을 열 때라고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나가 등장합니다.

한나는 불임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시대에도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녀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에게는 엘가나라는 친절한 남편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브닌나라는 또 다른 아내도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아이를 낳고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면서 한나의 고통은 극심했습니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브닌나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한나의 곤경을 더 어렵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삼상 1:7a)

흥미롭게도 그 도발은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찾아왔습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공격은 매년 그들이 실로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갈 때 시작되곤 했습니다.

문제는 한나가 상황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 즉 만군의 여호와를 만나도록 지정된 장소에 있을 때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태를 닫으신 분은 주님이셨고, 그래서 그것을 여실 수 있는 분도 주님뿐이었습니다. 엘가나의 사랑과 격려가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보상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상한 채 만남의 장소인 하나님의 문으로 나아갔습니다.


문지방을 넘다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메주자)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엘리는 문설주 옆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문지기였습니다. 히브리어로는 그가 메주자 옆에 앉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메주자”(מְזוּזָה)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문틀 또는 문설주를 뜻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매일 상기시키는 표식을 달라는 명령을 받은 곳이 문설주입니다. 모든 히브리인 집에는 문지방 즉 메주자에는 쉐마(שמע)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메주자]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메주자는 움직이다라는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문틀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문의 경우에는 인간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 사이의 문지방이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한나는 자신의 상황이 타개되기를 바라며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9-11)


한나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실로로, 바로 하나님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녀에게는 열린 문, 열린 하늘 그리고 기적의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그녀의 자궁을 닫으신 분에게 다가가서 긍휼을 구하며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길이 필요했습니다.


궤도를 바꾸는 기적의 모퉁이에 있는 다른 많은 성경 인물들처럼, 거기에는 문입구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천사들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 아이를 낳지 못했던 사래는 천막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과부는 가난이 옛 이야기가 되기 직전에 문을 닫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 뒤바뀌는 출애굽기 이야기에는 피가 묻은 문설주가 있었습니다.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포털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로에서 하나님 집의 문설주인 메주자는 하늘이 땅과 만나는 곳, 그리고 한 시절, 한 현실에서 다음 현실로의 전환을 상징했습니다.


새로운 시즌으로 나아가다

따라서 이 이야기가 현재 "한 해의 머리"인 로쉬 하샤나로 알려진 티슈리월 첫째 날에 읽혀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유대 달력이 한 해에서 다음 해로 바뀌는 때입니다. 지금은 문지방의 계절이며 종종 하늘이 열리는 때로 생각됩니다.


로쉬 하샤나 부분(삼상 1:1-2:10)을 읽어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창조적인 기적을 행하셨고 한나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는 실로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문지기 중 가장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결국 한나의 기도를 확인하고 그녀를 이해하며 그녀의 간구를 축복했습니다. 아들을 향한 한나의 갈망은 응답되었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음 시대를 이끌 강력한 선지자를 세상에 데려와 궁극적으로는 다윗 왕을 위한 길을 닦으려는 하나님의 열망과 융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에 맞는 아이를 위해 한나가 열정적으로 기도할 때까지 그녀의 자궁을 닫으셨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고,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의롭고 중요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므로 그분이 그것을 되돌리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에 대한 응답으로 한나가 부르는 찬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 2:6-8)


이 노래는 시편 113편에 반복되어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시 113:5-9)


한나는 기적을 얻었고 그녀는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실로의 장막은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탈취했고 그 법궤는 다시 발견되었으나 그것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실로가 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성막의 모형에는 문이 하나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그 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관문이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요 10:9)


예수님 자신이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계십니다. 그는 포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개자이시며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므로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권리와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할 수 있으며,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야이시며, 창세기 49장 10절 예언에서 그분의 이름 중 하나가 실로입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야곱이 그의 열두 아들 모두에게 예언적 축복을 선포할 때, 유다에 대한 그의 축복에는 메시야에 관한 약속도 포함되었습니다. 통치자는 유다 가문에서 나올 것입니다. 홀은 그분의 손에 있고 그분은 백성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는 '실로'라고 불립니다. 이 히브리어 용어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사마리아 땅에 있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관문과 잘 연결됩니다. 실로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가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재림 때에는 야곱의 예언이 충만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는 땅의 모든 민족을 다스리고 통치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예언에는 마지막 때에 오실 메시야, 동쪽 문으로 들어와 성전 문설주 곁에 서 있는 군주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주자에 옆에 있는 대제사장 엘리처럼 말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 군주는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군주는 문 통로에서 예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초하루에 이 문 입구에서 나 여호와 앞에 예배할 것이며”(겔 46:1-3).


예수님 안에서 하늘과 땅이 만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돌파구를 요청하러 올 수 있습니다. 그분은 문이시며, 우리에게 돌파구를 열어주시며 다음 장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마음의 갈망과 여러분의 기도를 그분께 가지고 나아가서 그것을 아뢰십시오. 당신의 깊은 소망 중 어떤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거기에 놓여졌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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