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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기념하기

초막절은 기뻐함과 수확의 시간이지만 여기에서는 네 종의 식물을 흔드는 것과 우쉬피진(손님)을 환영함, 그리고 이 축제에 이방인이 얼마나 많이 포함되는지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룰라브와 에트로그 - 네 종의 식물을 흔들라는 명령: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הדר 하다르(유자 열매)]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레 23:40)


그래서 당신은 유자 열매와 종려나무 가지와 머털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구해서 그것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룰라브와 에트로그를 흔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룰라브는 종려 나무 가지의 잎들이 닫힌 것으로 막대기처럼 보이는데 세 개 가지를 함께 묶어서 룰라브라고 합니다. 에트로그는 레몬과 약간 비슷한 유자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열매를 찾기 위해 정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가지 잎사귀를 함께 모은 것들을 에트로그와 함께 축복을 낭독한 후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위와 아래의 여섯 방향으로 흔듭니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이 네 종의 식물을 선택하신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이 가지만 이유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여 기뻐해야 하는지도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대 민족은 이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의 전통과 방식을 형성했습니다.

우쉬피진 – 수카(장막)에서 손님들의 전통

유대 전통에서 발전된 또 다른 측면은 아람어로 손님을 의미하는 우쉬파진에 관한 것입니다. 역사의 상당 부분 동안 유대 민족은 바빌론(또는 바빌론의 통치 아래)에 살았고 초기 랍비의 저작물 중 많은 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카의 초가 지붕 아래에서 어떤 성경의 인물들을 은유적으로 즐겁게 대접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정교한 규정들이 발전되었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손님을 환영한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 있는 손님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9:11-12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방인들은 우상숭배자로 여겨졌고, 그들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포함시키길 원하셨다는 개념은 대부분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성령이 “모든 육체”에게 임하셨을 때 그것은 많이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이 이방인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을까요? 처음의 유대인 제자들이 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에 모였을 때,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아모스의 이 동일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스가랴 14장은 결국 모든 나라가 실제로 초막절을 축하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야고보는 선지자들이 이방인의 포함을 예견했으며 우리는 모두 다윗의 가족 장막에 환영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 (행 15:16-18)


헬라어가 이것을 약간 다르게 옮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대로 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거처를 다시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초막에서 손님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귀빈이신 예수님을 위한 자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는 바울이 말한대로 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과거에 하나님은 광야의 성막에 거하셨고, 그 다음에는 다윗 왕과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집에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 직후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된 후 하나님은 이미 그 다음 거하실 곳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그 후에 성령을 보내사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단지 방문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하기를 원하십니다!


시대의 징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 절기들은 또한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 계획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한 해 주기의 첫 번째인 유월절은 우리의 자유를 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치르신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을 가리킵니다. 샤부옷(오순절)에서 첫 열매를 축하하는 것은 그의 부활을 가리키고, 세 차례의 가을 축제는 하나님의 달력에서 여전히 다가와야 할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나팔절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예고할 것이며,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과 관련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초막절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신부와 어린양의 결혼, 그들이 마침내 “함께 이사”하고 영원히 함께하는 교제를 즐기게 될 것 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서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려주신 그림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집처럼 편안하게 하세요

그 동안에 하나님은 진정으로 우리 안에서 살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그 분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면 우리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지만, 그들이 떠나면 종종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영구히 이사를 오게 되면 일반적으로 상황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원한 손님으로 모시는 것은 필연적으로 현상 유지에 변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더 많이 사랑할수록 그를 편하게 하고 집처럼 느끼도록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그분이 거하시기에 합당하고 즐거운 곳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곳에서 그를 만날 때, 우리의 영혼은 찾고 있었던 안식을 발견하고 우리가 집에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쉬피진을 초막에 초대하는 것은 장차 올 멋진 교제의 달콤한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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