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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예수님은 장막을 치셨고 바울은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초막절(장막절), 즉 히브리어로 수콧은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로 그 속에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면 매우 의미 있는 다양한 요점들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준비해야 하는 네 가지 종의 식물에 대한 신비한 명령과 손님(우쉬피진)을 초막에 초대하는 부분, 기쁨의 추수 축제 또는 물 붓기 의식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특히 한 가지 측면, 곧 그 허름한 작은 주거지, 초막 자체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거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슥 2:10-1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려고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그분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모든 말씀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이 땅에 사시기 위해 오셨고, 하나님께 보냄 받으신 것입니다.


성육신했다는 이 단어는 육신, 몸, 육체을 입은 그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 안에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

육신을 입은 우리의 지상 생활은 장막 생활에 비유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로 이루어진 지상의 “장막”에서 살기 위해 영광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수콧(סוכות)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그것은 출애굽 후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목에서 광야생활을 했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임시 거처는 우리에게 이 삶의 취약성과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요? 어쨌든 그것은 레위기 23장의 지시에서 당신이 확실히 얻는 인상입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23:42-43).


장막 거주자

예레미야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의 공식적인 약혼식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를 유랑하는 이 시기를 신혼 기간으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이야기에서 중요한 시기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잊지 않기를 바라시는 여정의 일부였습니다.


임시 대피소를 짓는 것은 매우 실용적인 일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장막 거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도 장막, 곧 회막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하늘의 모형에 따라 그분의 장막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성막을 “첫 번째 장막” 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8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처음에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 당신의 주도로 광야의 장막에 거했습니다. 나중에 다윗 왕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주도가 아니라 다윗의 주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쉐키나의 영광은 나중에 육신의 장막, 즉 다윗의 왕조에서 나온 육신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위한 적합한 집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왜 첫 번째 장막인가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유다 계통의 나사렛 사람 메시아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으로 된 장막에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는 여호와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있습니다! 장막이 2개 이상 있습니다. 다시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시고, 바로 그 성령, 쉐키나를 보내어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장막이요 성막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의 다른 많은 주요 인물들(몇 예를 들면 기드온, 다윗, 베드로, 예수님 등)과 마찬가지로 바울의 직업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수입은 자연계에서 천막을 짓는 데서 나왔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그의 임무는 사람들을 영적인 “장막”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인도한 모든 사람은 메시아의 희생적인 피로 정결케 된 작은 성막이 되고, 만군의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신 쉐키나(שכינה)가 오늘날 우리 안에 성막을 이루고 계십니다. 거듭난 신자로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진 장막의 축소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집에서 영광 중에 그분과 함께 장막을 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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