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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의 배경

그레그 덴햄의 게스트 블로그


성찬식은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중심”으로 불려왔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주의 만찬” 또는 “성체 성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의 죄 없는 몸을 상징하는 줄무늬와 구멍이 뚫린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부수어서 먹으며, 상징적인 잔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교회 역사에서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속적으로 반복하라고 명하신 규례(“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눅 22:19)와 특별한 축복과 거룩함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선포하는 성례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찬식의 배경이 중요합니다!


특히 성찬식은 교회 예배의 중심 행위이기 때문에 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맥락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성찬식의 맥락이 누락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문맥상 “이것”은 무엇일까요?


유월절 식사가 배경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성서력으로 니산월 14일인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 저녁에 기념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식사는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서 어린 양의 피로 표시된 집들을 넘어가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모호한 "최후의 만찬"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간절한 갈망”은 순간적으로 표현되는 몸과 영혼과 정신의 강렬한 열정을 말하며, 이는 예수님이 온전히 현존하셨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가장 위대한 계시를 드러내신 것은 유월절 만찬의 맥락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빵을 떼셨지만 그것은 보통 빵이 아니었습니다.
유월절과 출애굽이 기념되고 있었습니다. 그 빵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줄무늬가 있어야 하고 구멍이 뚫려 있어야 합니댜. 그것을 쥐고 있으면 구속과 새로운 시작의 비용이라는 엄숙한 대가를 상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누가복음 22장 20절은 예수께서 구원의 잔 또는 해방의 잔으로 알려진 유월절 식사의 세 번째 잔을 드셨다고 알려줍니다(이는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라는 바울의 설명과 일치합니다). 세 번째 잔에는 유월절 양을 상징하는 포도나무 열매의 붉은 색이 채워졌습니다. 이 문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희생되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밝히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다가올 시대를 위해 더 많은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 14:25).


이것은 그분이 재림하실 때, 그분이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좌에 앉아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실 때에도 “예수님과 유월절 연결”이 계속될 것임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구속 계획은 다시 한 번 기념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계획이 완성될 것입니다!


성찬식의 정황은 여느 때와는 다른 하루를 드러냅니다. 그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요 19:14), 즉 유월절의 금요일 같은 날이었습니다. 이는 식사가 니산월 14일이 시작되는 목요일 저녁에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전날 밤 해가 지면서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아침 9시(유대인의 계산으로는 여전히 14일)에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예견했던 대로 새 언약을 시작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되실 것이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아니면 바울이 쓴 것처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2세기에 바울이 사역했던 지역의 교회들이 니산월 14일에 유월절과 메시아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했다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닌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맥락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그것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날의 상황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조금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 배경은 만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새 언약이 십자가에서 그분의 보혈로 어떻게 시작될 것인지를 계시하신 맥락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아들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천재적인 계획의 열정과 목적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은 길을 바로잡는 역사에서 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월절의 참된 배경을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성찬 경험에 영향을 미칩니다.

다음은 맥락이 성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예입니다:


1. 니산월 14일 이집트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유월절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주실 때 온 세상에 미치는 세상의 죄의 속박에서부터의 더 큰 출애굽에 대한 예고이자 예언이었습니다. 


2. 예수님이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이스라엘을 통한 영원한 과거의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영원한 미래에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3.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세우신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은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요, 메시아를 통하여 온 세상이 초대된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에서 주님은 교회가 그 뿌리를 찾도록 의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개인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셨지만, 또한 이스라엘 미래의 민족적 구원에 대해서도 설명하셨습니다(렘31:31-37). 이 위대한 미래의 날에 하나님은 돌판에서 율법을 취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실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제시하시는 새 언약은 민족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가능합니다.


4.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 부활을 기념하는 역사적 유월절인 니산월 14일의 성서력 날짜를 불법화하고 그 행사를 성경적 근거에서 삭제한 것은 교회 역사에 끔찍한 전환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입니다. 그 대신 그는 모든 교회에 부활절을 지키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문맥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은 콘스탄티누스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성찬식의 배경은 교회가 “유대인 친구들을 시기나게” 하는 전도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 유대인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펼쳐가는데 근거하고 있으며, 메시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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