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슈미니 아째렛(שמיני עצרת 제 팔일 대성회): 명절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날

슈미니 아쩨렛은 대회의 여덟 번째 날로 번역됩니다. 초막절이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절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회의 여덟 번째 날이 있다는 것은 다소 이상한 일이지만, 초막절이 7일이라는 바로 그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덟째 날도 명령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23:36)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레위기 23:39)


7과 일곱째 라는 숫자는 초막절에 관한 지침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대회의 여덟째 날인 슈미니 아째렛에서 볼 수 있듯이 숫자 8도 의미가 있습니다.


일곱째 달의 진정한 정체성

초막절인 수콧은 현재 티슈리로 알려진 7월에 열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빌론에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벨이 히브리어로 혼란시키다라는 단어인 점을 감안할 때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티슈리라는 단어는 "시작"을 의미하는 바빌론의 고대 아카드어 단어입니다. 유대 민족이 새해를 하나님의 달력의 일곱째 달로 시작하는 것으로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바빌론에 있을 때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7월 1일에 열리는 나팔절은 이제 일반적으로 "올해의 머리"를 의미하는 로쉬 하샤나라고 대신 불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은 봄의 유월절로 시작됩니다.


이 달이 연초가 아니라면 일곱째 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분명히 이 달은 세 가지 주요 행사가 있는 매우 중요한 달입니다. 첫째 날은 나팔절, 10일째는 욤 키푸르, 보름인 15일째는 초막절입니다. 또한 숫자 7이 우리의 관심을 끌 것입니다.

성경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왕상 8:2)


솔로몬 왕 시대와 바벨론 유배 기간 전에는 일곱째 달이 에다님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시작을 의미하는 티슈리월이 아닙니다.


그러면 에다님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브리어 "에이탄"은 견고하고, 안정적이며, 일정하고, 강하고, 바위처럼 영구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에다님은 복수형입니다. 왜 복수일까요? 달의 이름이 물을 가리키고 히브리어로 물은 복수형이므로 그 형용사가 복수형으로 일치된 것입니다.

“에다님”이라는 달의 이름은 꾸준히 흐르는 물, 마르지 않는 일정한 강을 의미합니다.

생수와 슈미니 아쩨레트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슈미니 아쩨렛은 심하트 토라 (שמחת תורה 토라의 기쁨 )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날 거리에서는 토라 두루마리를 안고 기쁨과 환희로 춤을 추는 종교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모세오경을 다 읽는 주기는 이제 새해 첫 달인 티슈리월의 장막절 끝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심하트 토라는 명절 전통에서 비교적 후대의 것으로 알려지지만 예수님 시대로 돌아가 보면 물 즉 생수 이야기와 연관됩니다.


비가 오지 않는 여름 내내 유대인들의 기도에는 이슬을 내려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가 포함되지만 초막절에는 본격적으로 비를 기원하는 기도를 시작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이스라엘에서 물은 매우 중요합니다. 살고 죽는 것이 물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슈미니 아쩨렛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물 전제 의식을 거행하는 전통이 이미 있었습니다. 크게 기뻐하면서 물을 길어 제단 위에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슈미니 아쩨렛은 우리 기쁨의 계절의 절정입니다. 탈무드는 “물 긷는 곳에서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자는 평생에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수카 51A).


이런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다음 말씀을 하시기 위해 일어서신 날이 절기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날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명절의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 7:37-38).


“생수”에 대한 개념은 성경에서 중요하고도 익숙한 주제입니다(사 55:1, 겔 47; 슥 14:8).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분은 영원히 흐르는 생수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셨으리라.” (요 4:10)


물은 히브리어로 단수 형태가 아닙니다. 생수는 "마임 하임"(מים חיים) 이라고 불립니다. 마임은 둘을 나타내는 쌍수 형태입니다. 한 쌍의 양말, 한 쌍의 눈, 한 쌍의 물(위와 아래) 그리고 한 쌍의 생명(이생과 내세)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이 세상 뿐 아니라 내세에도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초막절의 여덟 번째 날인 슈미니 아쩨렛과 연결됩니다. 일곱은 완성의 숫자이지만 여덟은 영원과 내세에 관한 것입니다. 초막절 7 일 후에 이어지는 슈미니 아쩨렛 행사는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영원히 흐르는 생수, 곧 다가올 세상에서 그분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의 기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


생수 한 잔 하시겠습니까?




조회수 253회댓글 0개

관련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