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OFI KR GOLD.png

왜 불타는 떨기나무인가?

최종 수정일: 3월 24일

떨기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모세에게 그분의 임재를 알리셨을 것입니다. 왜 불타는 떨기나무일까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제 마음에서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불타는 떨기나무 에피소드는 바빌론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잠시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출 3:1-6).


소멸하는 하나님의 불

하나님의 임재와의 만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두렵게 깨닫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 심지어 그분과 가까이 있는 것조차 크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자 재빨리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눅 5:8).


이사야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5)


어느 날 이곳 이스라엘 회중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영광의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그분의 강력한 임재와 그토록 친밀하게 접하고 있는데 우리가 불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 4:24).

우리는 이스라엘의 광야 방랑이 시작될 무렵,  죽어야 할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뻔뻔스럽게 줄지어 들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됩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대제사장 아론이 행하는 대로  따르기로 되어 있었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두고 하나님이 하신 지시를 그들 스스로 무시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식이 많고 하나님은 단지 제안 사항들을 주셨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가 무엇이든, 그들은 크게 착각한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하나님의 불이 그들을 삼켰습니다. 그 충격은 이스라엘 진영 전체에 퍼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냉엄하게 지적되었습니다. 그분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무엄함과 신성 모독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심판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실 분 앞에 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 것입니다.


나무가 타지 않을 때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룩한 불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로 나타나신 것은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타지 않았다는 사실은 - 떨기나무는 신경쓰지 마세요 -  특별합니다. 그리고 왜 떨기나무는 불에 타지 않았을까요? 나무가 하나님의 현현에 연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곳은 상수리나무 또는 테레빈나무에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지시했지만 하나님이 실제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곳은 모레 상수리나무였습니다.성경에서 종종 나무는 여러 부류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데 사용됩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무가치한 죄인들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거대한 상수리나무든 하찮은 찔레나무든 그들 모두는 불에 타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썩기 쉬운 나무라는 이 문제는 인간의 필멸성을 일깨워 주며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로 추적될 수 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는 불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그 본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하고 살 수 없지만 메시야는 우리 가운데 거니셨습니다. 불타는 떨기나무(즉 불과 나무)는 신성과 인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고 주의 음성이 임했습니다. 곧 여호와의 보이는 신의 현현이였습니다.


불 속의 네 번째 사람

이제 바빌론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평소 때보다  일곱 배 더 뜨거운 용광로가 있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에는 불타는 떨기나무의 반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네번째 사람이 있습니다. 불은 분명히 그들을 태워버렸어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기적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원수를 불사르기 위하여 만들어진 풀무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자는 불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 또 다른 신적 현현이었습니다.  성육신 이전의 하나님의 메시아가 또한 그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은 그들을 태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불 속에 있는 네 번째 사람으로서 당신의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덕분입니다. 그분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1-23)


중세 주석가인 랍비 라쉬는 애가 3장의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진멸당하지 않고, 멸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있습니다. 때때로 이 구절은 소멸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인자와 긍휼이라는 의미로 번역되는데 물론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 뿐일까요?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일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인자를 베푸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자를 베푸시지 않으실까요? 그분은 무슨 근거로 인자를 베풀지 안 베풀지를 결정하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소멸될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떨고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보존되어서는 안 될 때에도 우리가  보존되는 것은 메시아 예수의 공의와 그분의 완전한 희생 때문입니다. 대가는 정당하게 지불되었습니다. 우리가 긍휼을 얻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4-16)


하나님의 거룩한 불 앞에 서서 소멸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위해 지불하신 희생을 근거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들처럼 다른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방법으로 그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에 살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열매 없는 모든 행실들과 죽은 행실들과 용서를 거절하고 자기 길을 고집하는 모든 불의한 자들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떨기나무처럼 여러분은 불타지 아니할 줄을 알기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에게는 그을림도 없을 것입니다.


ree

댓글


man%2520standing%2520under%2520orange%25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최고의 방법

THE BEST WAY TO BLESS ISRAEL IS WITH JESUS

원포이스라엘의 모든 사역이 여러분들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OFI logo2.png

Tel : +972-9-8611013

David Pinkas St 47, Netanya, ISRAEL

COPYRIGHT © 2021 BY ONE FOR ISRAEL - ALL RIGHTS RESERVED
  • 화이트 유튜브 아이콘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