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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야 바이엘의 희생은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스라엘 방어군(IDF)에서 자원 복무하며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기독교인 우리야 바이엘(Urija Bayer)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우리야가 유대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시민권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회 곳곳에서 사랑과 감사의 물결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실 그의 복무와 희생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깊이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들 때문이었습니다.


섬기러 온 그리스도인들

우리야의 가족은 홀로코스트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3대 전에 건너와 나이 많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돌볼 요양원을 지었던 독일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선 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축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봉사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이엘 가족과 그들의 공동체를 기독교 시온주의자라고 부르고, 다른 이들은 그들을 메시아닉 기독교인, 심지어 메시아닉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들이 가진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러 온 룻과 같은 이 그룹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섬기고, 축복하고, 위로하기 위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이 필요할 때 떠나지 않고 유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꺼이 싸울 용의가 있습니다. 우리야의 형제자매 중 두 명은 여전히 가자지구에서 전투병으로 복무 중입니다. 그에 관한 수많은 언론 기사에서 "영웅"이라는 단어가 이 기독교 중사를 두고 반복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초정통파 뉴스 사이트(베하드레이 하레딤)도 우리야가 전투원으로 싸우다 '영웅적인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60년 전 이스라엘을 섬기러 온 그의 기독교인 가족의 장수를 기원하는 등 가장 친절한 표현을 전했습니다.

그 기도들은 어디로 갔나요?

우리야 중사는 나할 여단 마글란 특수부대 부대원으로 복무했으며 전투 중 심각한 머리 부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기도가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에는 독일대사와 의료기관 수장, 군 고위 인사 등 적어도 2000여 명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그의 선택과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야는 이스라엘 의회에서도 언급되었는데, 국회의원인 미키 레비(예쉬 아티드당)는 바이엘 가문의 희생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우리야는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우리야와 바이엘 가족에게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450명이 넘는 이스라엘 군인이 사망했습니다. 군인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왔습니다. 세속적 유대인, 종교적인 유대인, 메시아닉 유대인, 아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 베두인족, 드루즈족, 무슬림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지만 아랍인과 이스라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예외가 적용됩니다. 우리야는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야와 그와 같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을 지키기로 선택합니다. 이스라엘 군의 예수님을 믿는 600여 명의 유대인 및 아랍 군인들처럼 그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탁월함과 용맹을 추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군대에서 믿는 사람들의 용기와 신실함은 종종 그들이 가장 어려운 부대에서 책임 있는 위치를 차지하도록 이끕니다. 이것은 심오한 증거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편 110:3)


우리야 바이엘의 삶이 메시지를 남기다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야의 사랑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려는 의지에서 나타났습니다. 극심한 증오와 잔인함이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야의 사심 없는 결정과 그에 따른 죽음은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례식은 12월 19일 말알롯에서 대규모 군중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습니다. 깃발을 든 사람들이 군 묘지로 향하는 길 양쪽에 모여들었습니다. 군대 랍비에 의해 장례식이 끝난 후, 우리야의 어머니는 “내 작은 아들이 빛의 근원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라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매우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녀는 마글란 부대의 동료 병사들에게 우리야의 신앙이 알려져 있다고 군중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삼촌은 장례식 마지막에 기도하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우리야와 그의 가족에 대한 광범위한 언론 보도는 그들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독일 기독교인이 왜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야는 IDF에서 복무한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국가를 수호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는 겨우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의 가족이 이스라엘을 위로한 것처럼 그를 기억하는 것이 축복이 되고 그의 가족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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