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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풍성한 의미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가장 놀라운 메시아 예언 중 하나로 인해 매년 이맘때에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임마누엘, 엠마누엘, 에마누엘 – 하누카처럼 영어로 철자를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히브리어로는 두 단어입니다: עִמָּנוּ אֵל –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이 약속은 이사야 7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오셔서 거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성경 전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이것을 깊이 생각하셨고 그분의 오심을 아주 잘 계획하셨습니다.


임시 회막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아담은 날이 선선한 시간에 함께 걸었습니다. 한때 인류와 가졌던 친밀한 교제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갈망하시는 것이었고 그것이 상실되어졌을 때 슬퍼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소망은 죄가 처리되고 교제가 회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셨을 때 행동으로 드러내십니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레 26:11-12).


우리는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진영 한가운데에 장막을 치시고, 그들 가운데 계실 수 있도록 완전히 작동하는 죄 처리 시스템을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분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과 동행하시며, 친밀함과 연결을 향한 그분의 갈망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임시 장막보다 더 큰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슥 2:10-11).


이 놀라운 예언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놀랍지요?

이사야서에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납니다: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사 48:16).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도록 하나님을 보내시겠다는 이 계획은 태초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태초부터 거기에 계셨던 영원하신 분이 여호와와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번에는 개인이었습니다. 목적을 따라 지은 성전의 의미 있는 상징과 예언적 기록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방문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변장한 왕족 방문객

저는 요르단에 있는 동안 국왕이 복지 공무원들이 고객을 학대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왕은 도움이 필요한 노인으로 변장하고 여러 사무실의 사무원에게 다가가 도움과 서비스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무례하고 경멸적이며 불친절한 관리를 만날 때마다 그들을 옆으로 세우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그는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그들을 해고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이 왕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 서비스는 상당히 향상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왕이 그렇게 비천하게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대체적으로 그들도 그 방문할 때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만왕의 왕은 바로 거기, 그들 가운데에 계시지만 변장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나사렛 출신의 평범한 유대인 목수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한 어린 아이가 예수님은 “피부를 입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은 성육신에 대한 아주 좋은 요약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유대인들은 그것이 그 말하는 바를 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 앞에 당연히 주저합니다(부끄럽게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충격적인 것을 피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는 감히 사람들에게 믿게 만드십니다. 그분이 불가능한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완전히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의 창조 세계 가운데로 오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이치에 맞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현자들도 “내가 너희 가운데서 세울 구속자는 아버지가 없을 것이다”(랍비 모세 하다르샨의 창세기 랍바)라고 말했습니다.


동정녀 탄생: 동화인가, 아니면 성경의 예언인가?

하나님이 나타나심 이것은 곧 영광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메시아 곧 인간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임마누엘: 마침내 다시 함께

하나님의 오심에 대한 위대한 계획은 끝없는 동행의 길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죄를 단번에 처리하셨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과의 관계에서 분리시키는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고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큰 기쁨으로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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