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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절(샤부옷)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유월절 후 안식일 다음날부터 날짜와 주를 세기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일곱 이레 즉 오십 일을 레위기 23장에 있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계산해야 합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레 23:15-16)

오늘날 유대인들은 출애굽 50일 후에 시내산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칠칠절( 샤부옷, 오순절)에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합니다. 사람들은 토라를 읽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염소 새끼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는 계명에 근거한 우유와 고기를 분리하는 유대 전통에 비추어 유제품을 먹는 기념 행사를 가집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스라엘의 모든 모습과 샤부옷 전통에도 불구하고(치즈케이크가 해마다 그 영광을 기념하는 것을 저는 기쁘게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실제로 유제품에 대한 축제가 아닙니다.

칠칠절 축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대인들은 샤부옷을 향한 카운트 다운으로 유월절부터 “곡식단을 세어오고” 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아니라 카운트 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날을 개수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히브리어로 "주들"을 의미하는 샤부옷까지 기대를 쌓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칠칠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유월절은 죽음의 사자가 히브리인들의 집을 건너 뛴 때를 기념하고, 초막절은 초막에 살면서 방황했던 광야를 기억하게 되는데, 칠칠절은 무엇에 관한 명절일까요?

유대교의 전통이 아닌 구약 성경으로만 보면 칠칠절은 다른 절기와 달리 존재의 분명한 이유가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이 절기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의미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함께 펼쳐집니다.

이 절기가 유월절과 출애굽 사건 이후의 시간을 세는 것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핵심 포인트는 유월절입니다. 원래의 성경 지침에는 칠절절까지 7주를 세고 난 후 그 다음날에 희생 제사와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으로 축하하고 푹 쉬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땅이 내는 열매를 축하하는데 일종의 수확 축제처럼 보입니다. 다소 무작위로, 드려져야 할 희생 제물과 요제를 설명한 후, 다음 구절이 나타납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23:22).


이 계명은 추수라는 주제와는 일치하지만 성경의 절기에 관한 장에서는 잘못 배치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와 나그네라는 주제는 이 잔치의 참되고 예언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구절 덕분에 모압여인 룻은 밭의 이삭을 주우면서 살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친족 구속자인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룻의 이야기가 칠칠절의 중요한 특징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주제는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에서 칠칠절이 오순절로 알려진 부분을 제외하고 칠칠절이 성취되면는 것을 통해서 신약에서 더 큰 초점으로 들어옵니다.

추수가 무르익다

오순절은 50일, 7주를 세라는 지시 뒤에 50(펜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이 어떻게 오순절이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더 유명하게 축하하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세례요한이 예견한 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요한이 키질, 밀, 쭉정이 등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 때(마 1:11-12) 요한의 말이 추수라는 맥락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은 종종 씨앗과 농작물, 추수과 추수기의 농사 용어를 비유하셔서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번성하는 것을 묘사하셨습니다. 그는 밭은 희어졌고 필요한 것은 추수할 일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후 불과 50일 후에 일어난 일을 보십시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행 2:5-12)

그날에 삼천 명이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군중에게 설교를 하자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교회의 탄생이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은 남자, 여자, 노예, 자유인을 막론하고 갑자기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약속된 이스라엘의 새 언약에 포함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과 참된 교제가 가능해졌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31-34)

새 언약(신약)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민족이 접붙여지도록 초대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문화 충격이었고 익숙해지는 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갑자기 칠칠절인 오순절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메시아의 피와 그분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수 있는 새 언약을 통해 모든 사람이 그분께 올 수 있는 새롭고 살아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이제 율법은 우리 마음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가 그분의 방식대로 살도록 도우시면서 모든 신자들 안에 내주하실 수 있습니다.

50의 중요성

숫자 50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오십년째 되는 해는 모든 빚이 탕감되고 노예가 자유로워지는 희년입니다. 오순절에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사건과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 각각 출애굽과 갈보리의 땅을 뒤흔드는 사건 이후 50일 후에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보충 설명을 하면: 50일(오순절)인 칠칠절(샤부옷)을 위해 7주가 계산됩니다. 휴가를 가기 전에 체크아웃을 하거나, 죄수가 감옥에서 풀려날 때까지의 날짜를 기록하거나, 강림절 달력에서 크리스마스까지의 날짜를 카운트다운하면 기대와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 드라마, 이 역동성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오순절로 엮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이것을 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4-5,8)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그들 중에 계시며 사십 일 동안 가르치셨습니다. 한 달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오순절까지 열흘을 더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십 더하기 십. 사십은 성경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숫자로 잉태 기간, 즉 절정으로 이르는 것들을 나타냅니다. 임신이건 징벌이건 그 기간은 성숙과 성취가 이루어질 때까지 성장의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50일까요? 10일을 더 추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10은 그 자체로 중요한 숫자입니다. 10은 권위, 질서의 완전성, 책임,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50은요: 50은 자유를 나타냅니다! 오십년째는 만물이 회복되어 자유케 되는 희년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 2:17)


샤부옷과 희년의 기쁨

성령님과 더불어 오는 해방 이전에도 시내산 언약인 율법은 그 자체로 자유에 대한 급진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십계명 다음의 맨 처음 단어를 생각해 보십시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출 21:1-2)

첫 번째 규율은 노예에 관한 것이고 노예를 어떻게 해방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몸 값을 지불하지 않고요. 신약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약의 율법은 원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주변 문화의 포학함과 노예 제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율법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모세 언약의 비범하고 해방적인 특성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사상가인 오스 기네스는 그 율법을 인류를 위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라고 부릅니다.

그는 선지자들이 율법의 기준에 따라 왕들을 불러낼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왕들도 법에 종속되어야 하는 권력 분리의 형태가 존재했다고 관찰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법은 사람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셨지만 그들은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칠칠절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핸드북을 주신 것입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도덕적 경계가 적을수록 우리가 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마침내 산아제한으로 가능해진 소위 "성적 혁명"이 여성을 구속한 것이지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행착오와 많은 오류를 통해 하나님의 법이 선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일부일처제와 정절이 제약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자유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죄성을 고려하며 우리의 성향이 악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율법은 가능한 한 최상의 사회를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역으로 번영을 누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땅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혹사되면서 경작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땅이 쉴 수 있는 '슈미타' 해인 7년마다의 안식년을 제정하셨습니다. 또한 통제되지 않은 채로 두면 부는 불가피하게 소수의 손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고 억압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매 50년마다 토지와 재산과 자유가 반환되는 대규모 재조정의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희년법이었습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 각 사람은 그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레 25:8-18).

희년(요벨)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바람이 물건을 운반하는 것처럼 또는 오순절에 성령이 변화를 가져오는 강력한 바람같이 돌진했던 것처럼 가져오다, 인도하다, 운반하다, 수행하다, 운반하다 등을 의미하는 어근 יָבַל(야발)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희년(יוֹבֵל 요벨)이라는 단어 자체는 나팔, 숫양의 뿔, 자유를 알리는 즐거운 나팔 소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추수의 기쁨에 대한 성경적 선포를 설명하는 "풍요의 뿔"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유의 영

칠칠절에서 우리는 지상에 대한 하나님의 명백한 목적에서 두 단계의 자유와 혁명을 갖게 됩니다. 유월절 이후 처음 50일 동안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은 그의 언약 백성을 만드십니다. 그분은 율법을 주시고 응답하도록 이스라엘을 초청하십니다. 그들은 조건에 동의했고 이제 야곱 족속는 더 이상 단순한 민족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입니다. 유대 민족은 한 종족에 속할 뿐만 아니라 믿음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출 24:3, 사43:1).

이것은 유일무이 한 것입니다.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자유롭고 번영하는 사회의 기초라면 자유의 영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그리고 갈보리에서 50일이 지난 후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신앙공동체를 세우시는데, 이번에는 땅의 모든 족속을 포함합니다.이제 우리는 새 언약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성령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믿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자유가 옵니다. 성령의 자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모세는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기 전에 그 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과 대화 했습니다. 마치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머무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것과 같습니다. 피와 희생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은 그들 뒤에 있었고(유월절과 십자가), 하나님은 새롭고 놀라운 것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봄 절기가 예수님의 초림에 의해 크게 성취된 것을 볼 때, 알려지지 않은 주님의 재림의 날짜가 오순절의 끝과 가을 절기 사이의 확정되지 않은 간격으로 비추어진다는 것은 이치에 맞아 보입니다. 그래도 알 수 있는 계절과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와 계절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주님이 모든 것을 정말로 새롭게 하실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며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의 대추수를 위해 전 세계와 이스라엘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임을 압니다. 성령님이 권능으로 오시면 우리는 우리의 죄와 회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바람처럼 상쾌한 시간이 올 수 있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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