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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이스라엘 블로그&아티클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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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메시아 약속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렘 4:1-2). 분명히 예레미야는 성경의 가장 위대한 약속 중 하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라는 그의 구절은 창세기 22장 18절을 거의 인용한 것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놀라운 것은 그가 그 약속을 인용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어떻게 인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나(그)”는 이스라엘일 수 없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3인칭으로 말씀하실 가능성도 없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을 다시 살펴보면, “네 씨는 원수의 문을 차지할 것이요, 그리고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


환난 날에 산성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나 1:6-7). 나훔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 그리고 확실한 심판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분은 그에게 피하는 자들의 산성이심을 선포합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열두 소선지서(호세아-말라기)는 하나의 책, 즉 ‘열두 선지자의 책’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이해는 각 책을 연결하는 많은 구절에서 비롯됩니다. 미가는 출애굽기 34:7의 전반부에 나타난 은혜로운 진리, 즉 하나님께서 죄악을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끝맺습니다. 나훔은 같은 구절의 후반부,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하지 않고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시작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12권의 예언서가 의도적으로 서로 엮여 있으며 각


에서부터 종말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전쟁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에 3:5-6)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부한 것과 하만이 모든 유다인을 멸절하기로 결심한 것은 단순한 교만과 보복 행위가 아닙니다. 이 두 사건은 성경에 나오는 깊은 갈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는 욕망을 부추겼고(창세기 27장), 사울이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것(삼상 15장)이 그 예입니다. 아각 사람이자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대해 오랫동안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또한 매우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드러냅니다. 하만의 행동은 자기 숭배에 사로잡힌 자기애적 성향


당신의 권리를 아십시오!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출 12:48). 시내산 언약(옛 언약)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하지 읺았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새 언약에 대해 크게 흥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방인이 선민의 모든 권리와 특권과 언약의 약속을 누리며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온전하고 평등하게 서려면 그들은 할례를 받고 그들의 모든 이방적 더러움을 벗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은 이방인으로서 마음에 할례를 받고 모든 의식적인 더러움이 깨끗함을 받았으므로 모든 이스라엘 시민의 모든 권리와 특권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완전하게 사랑받으며 동등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생각으로 여러분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찬송해 본 적이 없다면, 아마 그것은 여러분이


낙심한 마음을 위한 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 날에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을 듣는 자들아, 너희 손을 강하게 하라. 이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인 날에, 곧 성전이 건축될 때에 이 말을 한 자들이니라.…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아, 너희가 열방 가운데서 저주를 받았으나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복이 되게 하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손을 강하게 하라’ 하시니라”(슥 8:9, 13). 이 장에서 선지자는 남은 자들에게 두 번이나 “너희 손을 강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장애물에 낙심한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단순히 낙심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 없습니다. 나치 강제 수용소의 참혹함을 견뎌낸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에서 삶이 자신을 초월하는 의미나 목적에 뿌리를 둘 때 인간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드러낸다고


복 있는 사람과 아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의심할 여지 없이 시편은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여정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시편을 영감받은 기도와 찬송의 모음으로 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의도적인 구성을 가진 영감된 책으로 읽어야 할까요? 만약 단순히 기도와 찬송의 모음이라면 시편의 순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22편은 어디에 나오든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시편 21편과 23편 사이에 위치한다고 해서 그 해석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편이 영감된 책이라면 개별 시편뿐 아니라 그 배열 또한 영감받은 것입니다. 각 시편의 위치가 중요해집니다! 그렇다면 시편 전체는 통일된 메시지와 세심한 구조를 반영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전쟁 때에 에스더서의 교훈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6). 유대 명절 부림절 전날에 이란과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대 유대 역사와의 놀라운 유사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에스더서와 관련된 두 고대 민족이 비슷한 분쟁에 휘말렸고, 비 페르시아 이념가들이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몇 주째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밤낮없이 방공호를 드나들어야 했고,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만성적인 피로는 에스더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를 부각시키는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반복되지 않았던 특징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유대 백성이 가장 강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에스더는


주의 길을 예비함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3:1-2; 4:1, 5). 말라기의 마지막 장은 히브리 성경에서 네 가지 기능을 합니다. (한국어 성경 말 3:1-4:6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의 장입니다.) 이 장은 말라기서의 마지막 장이며, 열두 소선지서(호세아-말라기)의 마지막


군중이 아닌 말씀을 따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렘 23:16, 21). 예레미야는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설교하며 자신 민족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에서 살았습니다. 유배가 가까워지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렘 23:9, 11, 13-16, 21, 25-26, 28, 30-31, 33-34, 37 참조). 이 선지자들은 자칭 귀를 즐겁게 하는 자들이었고,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한 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렘 23:18, 22). 가혹한 진리를 선포했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았던 예레미야와는 대조적으로, 이 선지자들은 모두에게


예배가 일상적이 될 때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말 1:6-7, 11, 14). 포로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과 성전을 재건하러 떠날 때의 흥분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백성들은 일상적인 종교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양 떼 중에서 가장 약하고 병든 짐승들을 성전에 제물로 바쳤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해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삶은 고달팠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에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둔 확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17, 19-20). 잠언은 새벽녘에 이웃을 큰 소리로 축복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짜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잠 27:14). 더욱 짜증나고 심지어 모욕적인 것은, 깊은 트라우마와 끔찍한 비극을 "이히예 베세데르(יהיה בסדר)"라는 진심 없는 말로 경시하는 이 세상의 낙천주의자들입니다. 이 히브리어 표현은 문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할 때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2-14)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기록하라고 명하신 환상(합 2:2)은 하박국 2:5-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환상에서 갈대아인들에게 폭력적으로 정복당한 나라들은 정복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되는 다섯 가지 “화”를 받습니다(합 2:6, 9, 12, 15, 19). 이 화들은 갈대아인들을 향한 것이지만 탐욕, 폭력, 정욕, 그리고 거짓 예배로 이 세상에서 번영한 모든 사람과 나라에게도 적용됩니다(요일 2:16 참조). 그 모든 사람들은 결국 불에 타 없어질 것들을 위해 수고합니다.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를 위해 애씁니다(합 2:13; 렘 51:58 참조). 그러나 반짝이


이스라엘의 변호인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슥 3:1-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백성을 변호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를 발견합니다. 히브리어로 “사탄”이라고 음역된 고발자는 여호수아의 오른편에 서서 전적으로 사실인 내용으로 고발을 퍼붓습니다(1절). 여호수아는 제사장 직분에 합당하지 않은 죄인이며, 배설물로 뒤덮인 옷을 입은 자로 비유적으로 묘사됩니다(3절). 고발자의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와 함께 그가 대표하는 죄의 백성을 모두 내쫓으십시오! 그러나 여호수아를 변호하러 오신 분은 여호와의 천사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변


세대 간의 증오를 넘어선 은혜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슥 9:5-7).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던 이 2년 간의 전쟁과 고통스러운 손실, 그리고 대대로 이어져 온 증오로 얼룩진 중동 지역에서, 이 구절들은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재정립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가랴 9:5-7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네 성읍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히브리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숙적이었습니다(창 10:14; 수 13:2-3; 삿 3:3, 31; 삼상 17:1 참조). 두 민족 사이에


역사를 바꾼 거부
“제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에스더 1:10-12) 최근 용감한 이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두 나라 사이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란과 이스라엘만큼 급진 이슬람의 위험성을 잘 아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 메시지를 읽으면서 저는 에스더 이야기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웅을 떠올렸습니다. 와스디가 폭압적인 통치자에게 저항한 행동은 에스더 왕비의 등장과 유대 민족의 구원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와스디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녀를 모르드개


흩어짐에서 영광으로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개의 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뜨린 뿔이니라”(슥 1:18-19).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을 땅의 네 모퉁이로 흩은 네 뿔을 보았습니다(슥 2:6 참조). 그러므로 문맥상 이 네 뿔은 네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천사가 그들의 정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스가랴의 환상에서 새롭게 확장된 예루살렘과(2:4),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는 모습(2:11),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합류하는 모습(2:11)은 이 네 뿔이 다니엘의 환상에 나오는 네 부분으로 된 신상(단 2장)과 네 짐승(단 7장)에 나타난 왕국들, 즉 바빌론, 메대-바사, 그리스, 로마에 해당함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민 24:24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가르칩니


저주받을 수 없는 후손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에 6:13-14a). 저의 일생 동안 에스더서가 지금처럼 의미 있게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학 캠퍼스, 일부 교회, 그리고 인터넷 곳곳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증오가 점점 더 만연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만의 지혜로운 자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의 말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영감을 줍니다. 세레스의 말에 담긴 신학적 깊이를 이해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나마 정경적 맥락 속에서 그 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하만과 유대 민족 사이에 겪은 갈등은 단지 단편적인


하나님의 숨겨진 손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0-11a; 15-16) 에스더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깊은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장 암울한 순간에 많은 이들이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전 성경을 고려하지 않고 에스더를 읽는 사람들에게만 숨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


위로부터의 해석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슥 4:4-5, 12-13). 묵시문학에서 꿈과 환상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러한 환상을 받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일관되게 천사의 형상에 의존합니다. 스가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은 양쪽에 두 올리브 나무가 있는 일곱 가지의 금 메노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의 신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스가랴에게 두 번에 걸쳐 그 상징을 설명합니다. “이 일곱은[


그의 눈동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백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의 결과를 여러 민족에게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린다는 것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치는 자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없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지만, 결국 모두 이 진리를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이삭이 분노한 에서에게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창 27:33)라고 말했고, 발람이 발락에게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민 23:20)라고 했습니다. 하만의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가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미 7:17-20) 미가서는 토라의 핵심 구절들을 빠르게 인용하고 암시하며 끝맺습니다. 이 구절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는 독자의 믿음을 다시금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미가서에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된 하와의 후손(미가 5:2)은 뱀을 물리칠 것입니다(미 7:17; 창 3:14-1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황이 아무리 암


심판에서 은혜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습 3:8-9) 스바냐서는 놀랍도록 은혜로운 반전으로 끝맺습니다. 이는 스바냐 3:9의 “회복”이라는 단어로 나타납니다. 히브리어 단 어 “에헤포크”는 영어로 쉽게 번역하기는 어렵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완전한 반전을 의미합니다. 소선지서의 몇 가지 예를 통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욜 2:31)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바꾸고”(암 8:10). 스바냐서에서 놀라운 반전은 하나님께서 열방을 모아 불로 심판하시는 날에 일어납니다. 이 불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정화하는 불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


당신의 삶에서 키가 가장 큰 사람은 누구인가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졌음이라”(습 2:3, 9-10). 스바냐서는 인류를 두 부류로 나눕니다. 겸손한 자(습 2:3)와 교만한 자(습 2:9-10)입니다. 히브리어에서 "겸손"은 어원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낙심 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세, 즉 자신이 종이고 하나님은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교만"은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17, 19-20). 잠언은 새벽녘에 이웃을 큰 소리로 축복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짜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잠 27:14). 더욱 짜증나고 심지어 모욕적인 것은, 깊은 트라우마와 끔찍한 비극을 "이히에 베세데르(יהיה בסדר) ‘괜찮아 질거예요"라는 진심 없는 말로 경시하는 이 세상의 낙천주의자들입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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