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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이스라엘 블로그&아티클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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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택받다
“그 달 스물네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다시 임하여 이르시되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이르되 내가 하늘과 땅을 흔들고 나라들의 보좌들을 무너뜨리고 열방의 권세를 멸하리라 병거와 그 탄 자들을 쳐부수고 말과 그 탄 자들도 각자 칼에 맞아 쓰러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선언하노라 그 날에 내가 내 종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아 너를 택하여 인장 반지처럼 만들리니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학 2:20-23)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의 후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대상 3:19), “저주받은” 조부의 그림자 아래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날 밤, 하나님은 여호야긴으로도 알려진 고니아 왕을 책망하시며, 그가 비록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인장 반지일지라도 그를 뽑아내어 포로로 내쫓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렘 22:24-30). 이 비유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인장 반지는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데, 예레미야의 말씀은 고니아의 죄로
![[오늘의 묵상] 경청하는 법 배우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lg_1,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webp)
![[오늘의 묵상] 경청하는 법 배우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jpg/v1/fill/w_300,h_225,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f2c6b6b4fe29426aa468e9bf6d939d95~mv2.webp)
[오늘의 묵상] 경청하는 법 배우기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합 3:1-3, 8)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하박국의 영적인 변화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1:2a) 그리고 구원하지 않으신다고(1:2b) 비난하던 사람에서, 마침내 자신이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3:2, 16) “구원의” 병거를 타고 오시는 여호와를 고대하는 사람으로 변모합니다(3:8). 강포과 불의(1:2-4) 대


그러나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이처럼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구절들로 하박국은 고난에 찬 여정 끝에 기쁨과 소망과 믿음으로 돌아갑니다. 무거운 “짐”(합 1:1)으로 시작했던 이 책은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9)는 찬양으로 마무리됩니다. 여기 선지자의 애가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우리 메시아의 여정과 연결됩니다. 하박국 3장 13절은 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미래의 신적 구원 행위를 가리킵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


믿음과 현실이 충돌할 때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2-13) 하박국서의 능력은 우리가 감정적 절망과 영적 침체에 빠져 신학적 믿음과 실제 경험 사이에 큰 간극을 경험할 때 위로를 준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하박국의 신앙 위기는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실제 활동과 겉으로 드러나는 무활동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박국은 끔찍한 폭력(히브리어로 폭력은 "하마스". 1:2-3)에 대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과 자기 백성들 가운데서 벌어지는 정의의 왜곡(1:4


의로운 가지: 위대한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레미야의 환상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렘 22:13-15). 이 장에서 예레미야는 암시적이지만 심오하게 다윗 왕조의 왕들을 다윗 왕과 비교하며 정죄합니다. 다윗은 "모든 백성을 위하여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삼하 8:15)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다윗 왕조의 왕들은 정의와 공의를 무시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착취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회막에 머무는 동안 백향목 집에서 사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은 백향목 저택에 몰두하여 하나


불평에서 확신으로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합 1:1-4). 하박국서의 영감된 메시지는 “가르침”과 “붙잡힘”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려면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1:1)의 내용뿐 아니라, 선지자가 불신(합 1:2-4, 12-17; 2:1)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도(3:1-19)로 나아가는 개인적인 여정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박국의 승리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 중 하나는 "애가"라고 불리는 고대 기도 형식입니


기억할 가치가 있는 삶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나훔 3:7, 19). 성경에서 도시는 종종 의인화되는데, 여기에서 선지자는 앗수르의 도시 니느웨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도시와 그곳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니느웨가 남길 유산을 생각해 보라고 촉구합니다. 니느웨의 장례식에는 애도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마침내 니느웨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는 사람들의 환호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 먼저!”라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나 사회가 남기는 유산입니다. 삶을 온전히 자신에게만 바친 그런 사람은 진정한 친구 없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죽으면 이용당하고 학대당했던


회복된 다윗의 장막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암 9:11). 아모스는 그의 책 마지막 구절에서 심판에서 회복으로, 파괴에서 재건으로, 흩어짐에서 재모임으로 갑작스럽게 전환하는데, 이는 영화 제작자들이 말하는 “하드컷”과 같습니다. 매우 급작스럽고 대조가 극명합니다. 그러나 비록 아모스의 이러한 전환이 급작스럽지만 토라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언자가 거의 모든 예언을 모세의 종말론에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의 메시아 예언에서 특히 눈에 띄는 한 단어가 있는데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모스는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초막”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그 이유는 책 전체의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5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소포타미아의 천체 신인 “시쿠트”를 숭배하며, 하나님 대신 그 신을 하늘의 왕


풍요의 땅에서의 굶주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인터넷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성경에 즉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 시대에는 토라 사본이 성전(왕하 22:8)이나 여호와의 예언자들(단 9:10)에 의해 보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꿈(창 37:5), 우림과 둠밈(출 28:30; 레 8:8; 민 27:21; 신 33:8), 그리고 예언자들에게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또는 국가적 배교의 시기(위의 구절들처럼)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든 소통을 차단하시고 침묵하셨습니다(삼상 28:6 참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하


예레미야서의 위로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렘 30:1-3). 예레미야 30-33장은 "예레미야서의 위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확실히 "새 언약"에 대한 약속입니다(렘 31:31-34).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은 예레미야의 종말론이 토라, 특히 신명기 30장에서 어느 정도 인용되었는가입니다. 유배 후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하겠다는 약속(렘 30:3)은 신명기 30:3의 말씀과 명백히 일치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미 5:5-6) 저의 묵상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저처럼 유대인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찾아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종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여정을 시작하기에 가장 유대적인 곳은 후대의 랍비 문헌이 아니라 모세의 토라와 예언서들이었습니다. 히브리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예수님, 곧 우리와는 상관없는 분이라고 들었던 그분과 분명히 닮은 고대 구절들을 발견했습니다. 예언과 그 성취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사


깨진 약속에서 하나님의 깨지지 않는 언약으로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렘 3


하나님께서 마른 나무를 번성하게 하실 때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겔 17:22-24) 에스겔 17장은 다윗 왕조의 마지막 비극적인 날들과 그 뒤를 이은 바빌론 유배를 예언합니다(겔 17:11-21 참조). 모든 민족이 부러워했던 영광스러운 왕국에서 다윗의 성과 왕권과 영광은 폐허로 전락했고, 미래 왕국에 대한 모든 희망은 사라진 듯했습니다(시 89편 참조).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기 때문


아모스서에서 사도행전까지: 새 마음을 향한 부르심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5:25-27) 혹시 셔츠에서 튀어나온 실밥을 잡아당겨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깊숙이 실이 얽혀 있어서 당황했던 적도 있으시죠? 한번 잡아당기다 보면 어느새 작은 실밥 하나가 아니라 소매 전체가 통째로 뽑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암 5:25)라는 구절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민수기 14:33과 32:13, 두 구절이 연결됨을 깨닫게 됩니다 (민 32:13은 민 14:33을 인용한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은 모세오경의 줄거리에서 중요한 본문문인데, 이 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이 부족하여 약


심판 가운데 은혜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7-20). 하나님의 영광이 첫 번째 성전에서 떠나고 있을 때에도(겔 10:4, 18; 11:23),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심판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예언적 메시지를 받습니다. 에스겔의 예언, 곧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되고 하나님께 순종할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말씀은 신명기 30장(1-6절 참조)에서 직접 인용한 것입니다. 심판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집으로 인도하는 광야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4:6-8) 번영 복음은 언제나 아주 인기 있는 메시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 충분히 가지고 설교자에게 돈만 충분히 주면 행복하고 건강하고 부유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해 가지신 뜻은 언제나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무엇 때문이 아니라, 우


평화를 가져오는 정의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북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말과 병거와 기병과 큰 군대를 거느리고 두로에 임하게 하리니… 내가 네 노래 소리를 그치게 하며 네 수금 소리를 다시는 들리지 않게 하리니… 내가 네게 공포를 가져와서 네가 다시는 있지 아니할 것이요 비록 네가 찾더라도 다시는 발견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6:7, 13, 21). 종교적, 도덕적 다원주의라는 상대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의 진리가 상호 배타적이지만 어떻게든 동등하게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구절들은 많은 신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원독자들에게는 열국에 대한 예언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놀라운 소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한 열국에 대한 심판의 약속은 언젠가 마침내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깊은 안도감과 위안을 주었습
![[오늘의 묵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webp)
![[오늘의 묵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jpg/v1/fill/w_316,h_237,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a464fe9001b54fe8bda57f294c177aef~mv2.webp)
[오늘의 묵상] 침묵할 수 없는 진리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암 7:10-13) 이 짧은 이야기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것과 믿는 것을 거부하는 또 다른 예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왜 그럴까요? 선지자들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 우리 내면의 변호사들이 우리에게 팔아넘긴 자기 정당화의 변명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에게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은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3, 10). 메시아의 탄생이 예루살렘을 소동하게 했지만 이방 동방박사들에게는 그토록 큰 기쁨을 안겨준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요!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 국가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점점 더 곤란해하고 있지만,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깨닫는 기쁨에 놀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기쁨의 이 두 가지 감정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결코 중립적이 될 수 없다는 성경적 진리를 가리킵니다(적어도 오랫동안은 아닙니다). 그분의 탄생과 죽음, 부활은 우리 모두를 갈림길로 인도하며, 그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한 선택은 영원한 고통을 가져올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기쁨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하지 않는 것, 그 또한 잘못된 길로 내려 가는 선택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돌아오라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라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 1:15) “여호와의 날”이라는 구절은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 요엘서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데, 이 어휘는 요엘서의 중심 주제입니다(욜 1:15; 2:1, 11; 2:31; 3:14). 요엘 선지자에게 이 날의 엄청난 심각성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욜 2:2, 5, 11). 그는 비유적으로, 애굽에 무수한 메뚜기 떼가 남긴 파괴(출 10:4, 12-14, 19)를 침략군이 이스라엘 땅에 가져올 여호와의 날의 멸망(욜 1:4, 15)에 비유합니다. 여호와의 날을 이스라엘의 과거와 연결시키는 역사적 표식을 제거함으로써, 사도들은 요엘의 말씀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날에 대한 예언으로 바르게 이해했습니다(계 6:17과 욜 2:11, 계 9:3, 7과 욜 1:4, 2:4 비교). 이 날이 “가까웠기” 때문에(욜 1:15, 2:1, 3:14, 계
![[오늘의 묵상] 호세아서의 핵심: 포기하지 않는 사랑](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f1b130d80ae9468abd5a277ab99e8ff1~mv2.jpg/v1/fill/w_333,h_250,fp_0.50_0.50,lg_1,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f1b130d80ae9468abd5a277ab99e8ff1~mv2.webp)
![[오늘의 묵상] 호세아서의 핵심: 포기하지 않는 사랑](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f1b130d80ae9468abd5a277ab99e8ff1~mv2.jpg/v1/fill/w_300,h_225,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f1b130d80ae9468abd5a277ab99e8ff1~mv2.webp)
[오늘의 묵상] 호세아서의 핵심: 포기하지 않는 사랑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호 1:2). 어린아이가 모든 단어와 문법, 구문을 다 이해하는데도 왜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농담을 파악하려면 농담 밖의 문화에 대한 철저한 지식과 농담의 어떤 부분이 그 문화를 암시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농담은 단어들의 섬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연결 고리들이 유머러스하게 엮여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고 그 안에 담긴 “농담”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려면 선지자들와 사도들의 “외적 문화”에 대한 지식을 키워야 합니다. 이 외적 문화는 “모세”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이 문화에 대한 암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본문의 경우, 호세아 예언의 서두에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히브리어 단어들이 포


가상 세계에서의 치유: 호세아의 내적 치유법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호 7:1).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불안한 세대』에서 조나단 하이트는 Z세대의 정신 질환 팬데믹을 다루며, 놀이 중심의 어린 시절(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에서 휴대폰 중심의 어린 시절(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로의 전환을 그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2010년 아이폰이 발명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정신 건강에 대한 피해는 가상 세계에서만 살아욌던 사람들이 심각하게 느꼈었지만, 이제 전 세계가 스마트폰의 의도적인 중독 효과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이트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실재하며 진정한 치유에 필수적인 "영적 현실"의 힘을 지적합니다. 동의합니다! 선지자 호세아 역시 이스라엘의 내적 치유의 필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했지만, 오직 참된 영
![[오늘의 묵상] 구약성경을 연구하십시오!](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0763053971674081b16ac210b641d052~mv2.jpg/v1/fill/w_334,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5a19ee_0763053971674081b16ac210b641d052~mv2.webp)
![[오늘의 묵상] 구약성경을 연구하십시오!](https://static.wixstatic.com/media/5a19ee_0763053971674081b16ac210b641d052~mv2.jpg/v1/fill/w_317,h_237,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5a19ee_0763053971674081b16ac210b641d052~mv2.webp)
[오늘의 묵상] 구약성경을 연구하십시오!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행 26:2-3, 26-27). 누가의 저술 전략(사도행전을 기록한 이유) 측면에서 볼 때, 바울이 아그립바에게 한 연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복음이 진정으로 "정결한" 복음임을, 즉 예루살렘 사도들의 신앙과 일치하며, 더 중요하게는 유대인 성경(=구약)에 전적으로 부합함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아그립바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모든 관습과 문제에 정통한" 사람이었고, 로마 관리 베스도가 스


에스겔의 소망의 비결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이스라엘 족속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진 자들로부터 모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내리니 그들이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안전하게 살며 집을 짓고 포도원을 심으며 평안히 살 것이라 내가 그들을 멸시하는 모든 자에게 심판을 내리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겔 28:25-26). 에스겔 28장의 결론 부분에서, 본문은 예기치 않게 두로(겔 28:1-19)와 시돈(겔 28:20-24)에 대한 심판의 예언에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다시 모이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전환됩니다. 이 독특한 표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에스겔이 이 특별한 약속을 기록한 출처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은 신명기 30장, 특히 3-5절에서 나옵니다. 사실, 에스겔은 이 약속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의 책 첫 부분에서 다섯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에스겔 11:17; 20:34, 41; 28:2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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